9년 동안 명절 연휴에 고향을 찾지 않았다는 취업준비생 이청년(가명·30)씨. 이번 설도 다를 바 없다. 생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알바)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매일 구인·구직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취업 한파와 함께 치솟는 물가는 이씨의 목을 조인다. 여기에 학자금과 신용대출은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대출 원금과 이자만 합쳐 한 달에 100만원이다. 방법이 없다. 이씨의 마음은 무겁다.
명절 기간은 이씨와 같은 청년들에게 돈을 좀 더 벌 기회다. 명절 단기 알바는 평소보다 시급이 높아 짧은 기간 목돈을 마련할 수 있어서다. 편의점, 식당 홀서빙, 주방 설거지, 행사안전요원, 택배 상하차, 명절 선물 배송 등. 이씨가 8년간 해 온 명절 단기 알바도 셀 수 없이 많다.
“일급 10만원인 일을 연휴 때 하면 15만원까지 줘요. 보통 때보다 급여가 10~20%이상 높아요. 단기 알바로 버는 50만원은 3주를 살아갈 생활비예요”
이씨는 편의점 알바를 선호한다.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서다. 이씨는 “좋은 점이 있다면 도심지 편의점이라 연휴 때 손님이 적어요. 그래서 폐기 식품이 많이 나와요. 이런 것들로 배를 채워요, 버리는 음식이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어요. 며칠 식비를 아낄 수 있어 나쁠 게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3년 전 설, 명절 선물 배송 알바를 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전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복도를 지나 문을 두들겼는데 살짝 열린 문 너머로는 가족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주문한 명절 선물을 건네고 뒤를 돌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들었어요. 내 현실과 괴리가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죠”
이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구인·구직 앱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일을 구하는 거예요. 경기 침체로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늘고 있어요. 이번 설은 구직 혹한기인 것 같아요. 돈 벌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생존하기 어려워진 상황이에요. 지방까지 찾아봤는데 요즘은 거의 없거나 빠르게 마감되네요. 마지막까지 구해 볼 거예요”
이씨는 명절 기간 알바 자리를 구해 생활비를 어느 정도 마련한 뒤 다시 취업 준비에 매진할 계획이다. 상반기 취업에 성공해 다가오는 추석에는 양손에 선물을 들고 정든 고향집으로 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달라진 설 풍경…고향 대신 알바 찾는 청년들
경기 불황과 고물가로 명절 연휴 고향을 찾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1일 알바천국이 성인남녀 34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 연휴 계획’ 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중 6명은 명절 연휴 기간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설 연휴를 앞두고 진행한 동일 조사 결과보다 8.3% 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아르바이트할 것이라고 답한 이들의 응답 중 기존 근무하던 알바를 연휴 기간에도 쉬지 않고 하겠다고 말한 이들은 29.0%에 불과했다. 반면 설 연휴 기간에 단기 알바를 새롭게 구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들은 68.4%에 달했다.
전문가는 고물가와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명절의 풍경까지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는 “청년 고용률이 60%도 안 되는데, 절반은 비정규직이다. 노동 시장의 변화가 명절의 모습을 바꾼 것”이라며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가족 모임 등을 회피하는 영향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