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개원의, 봉직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등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의료 개혁 정책을 비판하며 원점에서 재논의 할 것을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서울시의사회는 15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주최 측 추산 500여명의 의사들이 참여해 정부 의료 정책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서울시의사회 회장인 박명하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조직위원장은 “정부는 1만5000명 전국 전공의들의 휴대폰 번호를 수집했고, 개원의들의 개인정보도 수집하려 한다”며 “전국 동시다발적 집회에 대해선 캡사이신 분사도 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강경 대응과 압박은 우리의 투쟁 의지만 높일 뿐”이라며 “의협 비대위와 함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 최선봉에 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의문을 통해선 △의대 정원 확대 철회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철회 △의대 정원 확대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 의료계와 원점부터 재논의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정책 책임자 문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윤수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왜곡된 의료체계의 원인은 저수가 때문”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의료정책을 맡고 있는 보건의료 관료들의 능력이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도 “이번 의대 증원 규모를 윤 대통령이 기획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면서 “그 밑에 있는 어용학자들과 관료들이 정책을 제안하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병원과 학교를 떠나고 있다”며 “기필코 의대 증원을 저지하겠다”고 전했다.
한동우 의협 비대위 부위원장은 보건복지부에 적정 의대 증원 규모, 필수의료 정책에 대해 의료계와 TV 토론을 갖자고 요구했다. 한 부위원장은 “대통령이 원한다고 해서 일단 2000명을 지르고 세부적인 것은 나중에 논의하겠다니 한심한 정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복지부는 잘못된 정보를 홍보하지 말고 생방송에서 의료계와 토론을 갖자”고 했다.
이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가 전국 40개 의과대학 학생 대표들이 단체행동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밝힌 가운데 서울시 내 9개 의대 대표와 학생들도 집회에 참여했다. 현장에선 서울대 의대 점퍼를 걸친 학생의 모습도 보였다.
사직서를 제출한 한 전공의는 마이크를 들고 의료 정책 전면 백지화를 호소했다. 자신을 내과 레지던트 1년차라고 밝힌 전공의 김다인(가명)씨는 “더 이상 수련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바로 병원을 나왔다”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모르겠지만 정책이 실행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의사들은 모두 정부의 의료 정책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봉직의는 “필수의료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하고 그전에 의료계와 합의했던 사항은 모두 파기하며 의사들을 이기심과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절차적으로도 민주주의적으로도 굉장히 잘못됐다는 생각에 집회에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의대 예과 2학년생인 김정우(가명)씨는 선배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의대 친구들이 증원 문제로 분노에 휩싸여있다”며 “정부는 의대생들과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의대 현장 상황을 제대로 알고 정책을 추진하는 건지 의문이다”라고 피력했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한국 의료가 위기에 처했다”며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원치 않지만 최상급 의료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전했다. 한미애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부의장은 정부의 의료 정책은 총선용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 부의장은 “정부가 내놓은 의료 정책을 들여다보면 국민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총선을 위한 정책을 쫓고 있다”며 “2020년 파업 때와 비교해 현 정부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의사단체의 집단행동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대전시의사회, 울산시의사회, 충북도의사회, 전북도의사회, 강원도의사회, 광주전남의사회, 경북도의사회, 경남도의사회, 제주도의사회, 충남도의사회가 동시다발적으로 각 지역에서 집회를 열었다. 각 시도의사회는 오는 17일 서울에 모여 정부의 의료 개혁 정책에 대한 대응 방침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