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봄. 배우 김고은은 두 인생을 살았다.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세 자매의 첫째 언니(tvN ‘작은 아씨들’)로 지내다가도 쉬는 날이면 무속인의 집을 들락날락하곤 했다. 징 치는 걸 배우고 경문을 외우다 굿 동작 하나하나를 연구하길 수개월. 길고 긴 동고동락 끝에 물음표는 조금씩 느낌표로 변했다. 흰 운동화 끈 동여 묶고 어깨를 털며 굿판으로 들어서는 뒷모습,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 속 무당 화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은 “감개무량함이 가시질 않는다”고 했다.
연기력으론 일찌감치 정평 난 것과 달리 그는 흥행 가뭄에 시달려 왔다. 그러니 나흘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가 단비 같을 수밖에.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파묘’에 유달리 애정이 갔던 그는 화림을 잘 표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단다. 화림의 첫 번째 굿판인 대살굿에 특히나 공 들였다. “젊은 무당인 화림이 가진 전문성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지점”이어서다. 굿판을 따라다니는 건 물론 시청각 공부에도 힘썼다. 노력의 결과는 굉장했다. 그와 대살굿 장면을 함께한 선배 배우 최민식이 “‘파묘’ 팀의 손흥민이자 메시”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굿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김고은은 곧장 해박한 설명을 내놨다.
“무속인 분들을 볼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 역시도 대살굿 장면에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듯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대살굿은 일꾼들 대신 돼지에게 살을 보내는 방어굿이에요. 두 번째 굿인 ‘혼 부르기’ 장면에선 대신 울어주며 한을 달래주듯 구슬프게 경문을 읊었어요. 떠돌고 있는 혼에게 오시라고 달래주는 내용이거든요. 경문은 읊을 때마다 음과 박자가 달라져요. 실제 무속인처럼 애드리브를 해보려 했지만 안 되겠어서 음을 통째로 외워 연기했죠. 마지막 굿인 ‘도깨비 놀이’는 귀신을 속이기 위한 의도예요. 귀신 씐 봉길(이도현)에게 집중하면서도 말투를 일상에 가깝게 하는 데 신경 썼어요.”
김고은이 맡은 화림은 이른바 ‘MZ 무당’으로 불린다. 세련된 젊은 무속인의 이미지를 따온 캐릭터다. “실제로도 고급차를 타고 다니며 트렁크에서 말피나 닭피를 꺼내는 무속인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며 말을 잇던 그는 “화림이나 봉길 역시 그런 결을 생각하며 의상·분장·연출 감독님과 논의 끝에 구현한 인물들”이라고 설명했다. 큰 갈래에서 굿 퍼포먼스와 화림의 외피를 생각했다면, 작은 갈래로는 자잘한 습관에 집중했다. “사람의 기운은 사소한 데서 느껴진다”는 지론 때문이다. “상덕(최민식)에게 반존대를 한다거나 굿을 준비할 때 몸을 살짝 털고, 칼을 집기 전 깃발을 뽑는 모습이나 아기를 진단하며 휘파람을 불 때 귀에 손을 대도 괜찮을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무속인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저도 진짜 무속인처럼 보이고 싶었거든요.”
개봉 이후 관객 사이에선 화림과 봉길 조합을 두고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김고은이 풀어준 화림과 봉길의 서사는 이랬다. “야구하던 봉길이 신병을 앓아 화림을 찾아가고, 화림은 봉길이 이 길을 걷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만류하지만 봉길이 가진 의지가 워낙 굳센 데다 화림을 향한 신뢰 역시 강해 그를 외면하지 못한 거예요. 안타까움이 기저에 깔린 선생과 제자 관계인 거죠. 현재 시점에선 화림이 말하지 않아도 봉길이 알아서 척척 행동할 정도로 잘 맞는 사이고요.” 촬영하며 이도현과도 부쩍 가까워졌다. 김고은은 “연기하다 인상을 쓰려고 하면 이도현이 옆에서 한숨을 쉴 정도로 자잘한 호흡이 잘 맞았다”고 돌아봤다. 화림, 봉길 조합이 인기인 것을 두고는 “정말 좋은 현상이다. 흥행에 더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김고은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이 어려운 연기를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매 작품 연기로 찬사 받는 그의 동력은 책임감이다. 맡는 역할의 존재감과 함께 커지는 기대치를 실감하고 있단다. 김고은은 “연기는 항상 어렵지만 호흡이 잘 맞아떨어질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파묘’ 역시 그랬다”면서 “어렵고 힘들어도 이런 즐거움이 날 계속 연기자로 살게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