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배상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각 금융업권 별 반응이 분분한 가운데 가장 많은 홍콩 ELS를 판매한 은행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예상보다 기본 배상비율이 높아 자율 배상안을 마련하는데 점차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ELS 검사결과 및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기준안에 따르면 배상비율은 검사결과 확인된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별 특성을 고려한 투자자 책임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결정된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은 △적합성(적정성) △설명의무 △부당권유 등 위반에 따라 H지수 ELS 손실액의 기본 20~40%를 배상해야 한다.
다만 은행들의 경우 실질적인 배상비율은 약 10%p 정도가 가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부통제부실로 배상비율이 공통가중되는 항목에서 은행이 대면(오프라인) 판매한 경우 10%p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ELS의 90.6%는 대면 방식이다 보니 사실상 은행들의 기본배상 비율은 30%~50%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발표한 자율 배상안을 토대로 총배상 규모를 산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감원이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기 전인 8일 주요 은행 수석부행장들을 불러 이날 발표된 자율 배상안의 내용을 설명했는데, 각 은행들은 관련 내용을 서로 공유하고 총배상 규모를 추정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에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기본 배상비율이 생각보다 높게 책정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별 배상비율 가산은 쉬운데, 차감은 조건이 까다로울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일괄 배상이 아니고 판매사, 투자자의 여러 조건에 따라 배상 비율이 차등 산정되는 방식이다 보니 배상 규모를 산정하는 데에만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업권에서는 각 은행별로 배상 기준을 마련하기까지 긴 시간이 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ELS 판매 잔액은 18조8000억원(39만6000계좌)으로 이 중 은행이 판매한 ELS 규모는 15조4000억원(24만3000계좌)에 달한다. 은행은 수십만명에 이르는 투자자들의 개별 상황을 모두 살펴 배상 비율을 산정해야 하는데, 이 작업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은행들은 여전히 배임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배상은 은행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향후 제재나 소송까지 감안하면 자율배상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율배상이라는 표현은 결과적으로 판매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내부적으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같은 이유들로 현 시점에서 은행들이 선제적인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위원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추이에 따라 은행들의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은 다음 달부터 대표사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을 조정할 계획이다. 대표사례 외 분쟁 민원은 자율조정 방식으로 처리되며, 은행과 가입자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 소송으로 진행된다.
금융감독원에서는 홍콩ELS 손실규모가 크고 신속한 배상이 필요한 만큼 분조위 절차를 기존보다 더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김형순 금감원 은행검사1국장은 12일 ‘2024년 은행 부문 금융감독 업무설명회’에서 “분쟁조정 절차가 시작되면 대표사례를 만들기 위해 통상 2~3달이 걸린다”면서도 “다만 이번에는 은행 자율배상 가능성이 있고 대표사례에 따라 배상하는 게 효율적이고 부담이 적을 수 있어 분조위 절차를 더 빠르게 진행해 기존보다 훨씬 일찍 공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