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의 시 속 여성은 근래 다른 시들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의 욕망과 절망을 보여준다. 희미하고 무성적인 존재가 아닌, 냄새나고 생동감 있는 육신을 가진 여성성”이다. (시인 백은선)
독창성 있는 시를 써내는 시인 숙희가 데뷔작 ‘오로라 콜’을 출간했다. 아침달 출판사의 37번째 시집이기도 한 오로라 콜에는 숙희의 개성이 잘 담겼다.
‘아기’라는 상징을 통해 생명의 근원을 고찰하는 점이 숙희의 시가 지닌 개성이다. 시의 화자들은 비틀린 세계와 관계를 “무엇을 알기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눈을 떼지 않고 똑바로 응시한다. 숙희의 시는 설령 가져보지 못한 것이고 오지 않을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다리는 기도의 노래다.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지목된 저출산 또한 시인의 관점에선 색다르게 해석된다.
사랑을 통한 몸의 결합을 통해, 또한 그중 여성의 몸을 통해 아이는 탄생한다. 그러나 오늘날 고된 삶 속에 우울과 죽음에 더욱 가까워진 여성들은 이제 새 생명 낳기를 선택하려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자신의 불행뿐 아니라 아이의 불행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된 사랑의 결합이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아이의 존재는 때로는 지워지고 때로는 나타나면서 가능과 불가능을 오간다.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깜빡이는 미래의 시간이다.
이러한 죽음이 인간 종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일례로 저자는 수록된 시 ‘제한수역’에 “우리들이 매일 사용하고 버린 것들이 다 사랑이었지/플라스틱/인류애였지”라고 쓴다. 인간 종의 사랑이 쓰레기가 되고 다른 종과 이 세계의 죽음을 야기한다는 사랑의 아이러니가 드러나는 이 시는, “사는 것이 민폐임을 모르는/이십일 세기의 바쁜 시민들”의 존재 자체가 원죄에 가깝다는 죄의식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절망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숙희가 기다리는 미래는 죽음만은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게 된다. 시는 미래의 시간을 죽음의 편보다는 새 생명의 편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통해서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또한 여기에 있다. 방에서 오로라를 기다리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운 기대라고 할지라도 숙희는 포기하지 않는다. 시의 말미에서 거짓말처럼 벨이 울리듯이, 그 시간이 오리라는 믿음에는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있다.
아침달. 168쪽.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