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의 저가 철강재 공세, EU(유럽연합)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에 이어 미국마저 ‘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최근 미 상무부는 현대제철·동국제강이 현지에 수출하는 2022년산 후판(두께 6mm 이상 철판)에 부과하는 상계관세를 각각 2.21%, 1.93% 인상하는 내용의 예비판정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국내 철강 제품에 최고 6.71%의 상계관세를 부과한 데 이은 연속 조치다. 미 상무부는 포스코에서 수출하는 후판 등에 대한 예비판정도 오는 5월 내릴 예정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 사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심화되고 있다. 대선을 8개월가량 앞둔 탓에 해외 국가·기업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마저 자국 우선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조강량 세계 4위 기업 일본제철이 지난해 12월 밝힌 미국 3위 철강기업 US스틸을 인수(149억달러, 약 19조6000억원)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 및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하면 세계 3위 철강사로 도약해 미국 내 철강 산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여야 정치권 반발과 노동계 반대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이 우려를 표명한 뒤 미국철강노조(USW)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등 해외 철강기업 입장에선 고관세에 대응할 수 있는 ‘현지 기업 인수’라는 하나의 방법이 사실상 막혀버린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유력한 경쟁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세인 점 또한 국내 철강업계의 고민을 가중시킨다.
트럼프 후보는 앞서 재임기간(2017~2021년) 동안 외국산 철강에 5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며 보호무역주의를 적극 실시했는데, 이번에 당선될 경우 또다시 60%의 고관세를 적용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계는 이미 중국·일본의 저가 철강재 공세로 인한 내홍을 겪고 있으며, EU CBAM 관련 대책 마련 등 글로벌 무역 장벽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면서 “세계 최대 철강 시장인 미국의 대선 전후에 놓인 과제를 해소하기 위해 민관이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관세 부과는 그간 늘 있어왔던 일이지만 최근 대선과 맞물린 행보가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철강 관련 민관이 협력해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대선 이후의 미국 정책이나 미중 관계 등 다양한 시나리오별 우리의 대응책도 미리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 및 수요부진, 탄소중립 요구 강화와 더불어 각종 무역장벽도 높아져 국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와 업계가 원팀을 이뤄 통상마찰 사전단계에서부터 해결에 이르기까지 전 주기에 걸쳐 체계적으로 밀착 대응해 나가고 있으며, 주기적인 민관 대화를 통해 우리 철강산업에 영향을 미칠 통상 이슈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인화 포스코홀딩스 신임 회장은 전날 취임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철강업 경기 및 환경이 별로 좋지 않지만 부진 또한 길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위기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위기의 순간에 원가를 낮추는 등 경쟁력을 키우면 경기가 되살아났을 때 우리에게 보상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