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민희진을 필두로 한 레이블 어도어가 하이브에 반기를 들자 시총 8000억가량이 한순간 증발했다. 가요계에서는 피프티피프티 사태가 다시 벌어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파다하다.
하이브의 전신은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을 배출한 빅히트다. 방탄소년단이 큰 성공을 거두자 방시혁은 회사 이름을 하이브로 바꾸고 몸집을 키웠다. 하이브는 여러 레이블을 거느린 거대한 연합체로, 지방 자치단체를 둔 중앙 정부와 유사한 형태다. 별도 회사였던 플레디스(세븐틴 소속사)와 KOZ엔터테인먼트(지코 소속사), 쏘스뮤직(구 여자친구·르세라핌 소속사) 등을 사들여 순식간에 사세를 확장했다. CJ ENM과 뜻을 모아 합작사 빌리프랩(엔하이픈·아일릿 소속사)도 설립했다. 검증된 IP를 가진 소속사들을 규합한 게 하이브의 가파른 성장 비결로 꼽힌다. 현재 하이브는 엔터사 중 유일하게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는다.
가요계에 멀티 레이블 체제가 없던 건 아니다. 국내에서는 JYP엔터테인먼트가 일찍이 본부제를 도입했다. 1본부가 스트레이 키즈와 2PM·니쥬, 2본부가 있지, 3본부가 박진영과 트와이스·비춰, 4본부가 엔믹스, 스튜디오 제이가 밴드 데이식스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기획·제작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내홍을 겪은 뒤 아티스트별로 담당 센터를 별도 배치했다. 1센터가 보아·소녀시대·에스파, 2센터가 샤이니·웨이브이·루카스 등, 3센터가 동방신기와 레드벨벳, 4센터가 NCT, 5센터가 슈퍼주니어·엑소·라이즈를 담당한다.
이들 회사와 하이브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가 자사 제작팀을 본부 및 센터 등으로 구분하는 식이었다면, 하이브는 이미 존재하던 회사를 잠식하거나 외부 인력을 초빙하며 지금의 구조를 꾸렸다. 전자가 한 건물을 여러 층계나 방으로 나눈 것이라면 후자는 각자 존재하던 건물을 한 울타리로 에워싼 형태다. 구성원 사이 친밀도나 끈끈함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도어와 하이브의 갈등은 지난해부터 이어져 왔다. 하이브는 타 레이블과 달리 161억원을 출자해 어도어를 설립했다. 샤이니·에프엑스·엑소 등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여러 ‘대박’을 터뜨린 민희진을 데려와 대표 자리를 내줬다. 하이브 소속 인사가 경영진에 이름 올린 타사와 달리 어도어는 SM엔터테인먼트 출신 등 외부 인사가 요직을 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 소속 PR팀도 불신한다는 이야기가 이미 파다했다. 하이브는 산하 레이블의 제작 독립성을 장려하되 아티스트 관리 및 홍보 등 업무는 하이브 PR팀이 각 레이블을 나눠 담당토록 한다. 어도어 역시 하이브 PR팀이 홍보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판이했다. 하이브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홍보 자료 기획·작성을 위해 PR팀에 콘텐츠를 공유하는 타 레이블과 달리 민 대표는 뉴진스 관련 콘텐츠를 PR팀에 넘기는 걸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보안 등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어도어와 하이브 사이 거리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민 대표는 하이브와의 연결고리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하다. 그는 다수 인터뷰에서 하이브가 아니어도 뉴진스가 성공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설파해 왔다. 민 대표가 뉴진스의 성공에 하이브의 공이 없다는 식으로 줄곧 선을 그으며 하이브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 때문에 뉴진스의 IP(지식재산권)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어도어는 공식 입장에서도 아일릿을 뉴진스의 아류로 표현키도 했다. 어도어에서 생산한 IP가 모기업인 하이브에 귀속된다는 것을 인정 않는 모양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울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가족인 듯 가족 아닌 가족 같은’ 멀티 레이블 체제의 약점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각 사가 일체감을 느끼지 않으면 비슷한 시도는 얼마든 있을 수 있다. 피프티피프티 사태 역시 소속사와 유대감이 부족하던 멤버들이 외부 세력의 감언이설에 응하며 벌어진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번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은 현 체제가 가진 근원적 결함을 돌봐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동거하는 지금 형태가 아닌, 한 가족을 이루기 위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김예슬 대중문화팀장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