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 벗는 의대 교수들…암환자들 “죽음 선고” 절규

가운 벗는 의대 교수들…암환자들 “죽음 선고” 절규

기사승인 2024-04-25 11:49:18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 사직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대학병원 교수들이 가운을 벗는다. 정부는 실제 대규모 사직과 그에 따른 의료공백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안 차단에 나섰지만 사직 물결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 이탈에 이어 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나겠다는 상황에서 두 달이 넘은 의정 갈등은 변곡점을 맞게 됐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예정대로 이날부터 집단 사직에 들어가고, 다음주 중 하루 동안 수술과 외래진료 등을 중단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지난 3월25일부터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해당 사직서는 병원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아도 민법에 따라 한 달이 지난 이날부터 실질적 효력을 갖는다.

방재승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두 달 이상 지속된 초장시간 근무로 인한 체력 저하 속에서 몸과 마음의 극심한 소모를 회복하기 위해 오는 30일 하루 동안 응급·중증·입원 환자 등을 제외한 진료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전면적 진료 중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어 “주기적인 진료 중단은 추후 비대위에서 다시 논의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 기준 서울 ‘빅5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교수 5947명 중 사직서를 제출했거나 제출 의사를 밝힌 인원은 총 2899명으로, 전체의 49%에 달한다.

울산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주 1회 전면 휴진’과 ‘장기 육아 휴직’을 결정했다. ‘진료 셧다운’은 다음달 3일부터 일주일에 하루씩 시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비대위에 속한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울산대병원 등이 진료 휴진에 들어간다. 

울산의대 비대위는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남은 교수들의 정신적·신체적 한계로 인해 이전과 동일한 진료량을 유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환자 안전을 위해 외래·입원·수술 환자 진료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대위도 24일 회의를 열고 교수의 개별적 선택에 따라 오는 30일 하루 외래진료와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현 입장을 고수해 의대생·전공의들의 복귀가 없을 시엔 5월 말까지 매주 하루 휴진하기로 했다. 연세의대는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다.

연세의대 비대위는 “환자의 안전한 진료를 담보하고 교수의 진료 역량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국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이번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성균관대 의대 기초의학교실,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대위도 주 1회 휴진에 들어가기로 했다. 성균관의대 비대위는 “정부의 의료 농단, 의대 입시 농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학병원 교수들의 업무 부담이 상당히 늘고 있다”며 “최근 설문조사에서 80% 이상의 교수들이 신체적·정신적 한계 상황에 이를 수 있음을 호소했다”고 지적했다.

이미 상급종합병원의 수술은 절반 넘게 줄었고, 외래진료도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교수 사직 및 주기적 휴진까지 더해지면 환자들의 극심한 불편이 예상된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의대 교수 사직 물결은 전국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이미 충북대병원 교수들은 지난 5일부터 매주 금요일 개별적인 외래진료 중단을 이어가고 있다. 충남대병원과 원광대병원 비대위는 오는 26일부터 주 1회 휴진에 나설 방침이다. 경상국립대 의대·병원 비대위는 오는 30일 하루 외래 진료와 수술을 멈춘다.

사실상 ‘마지막 보루’인 교수들마저 병원을 대거 떠나면 의료공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빅5병원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인 A교수는 기자와 만나 “의료공백이 장기화 되면 많은 교수가 떠날 수밖에 없다. 이미 의사로서의 자존감은 무너진 상태이고 그동안 사명감으로 버텨왔지만 번아웃 되고 있다”며 “일주일에 세 번이나 당직을 서면서 이명이 들릴 정도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교수들이 환자 진료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일률적으로 교수들의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교육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학본부에 정식으로 접수돼 사직서가 수리될 예정인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사표 냈으니 출근 안 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교수님들이 현실에서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상급종합병원의 수술은 절반 넘게 줄었고, 외래진료도 대폭 축소한 상황에서 교수 사직 및 주기적 휴진까지 더해지면 환자들의 극심한 불편이 예상된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24일 성명을 통해 “두 달 넘은 의료공백으로 이미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은 탈진 상태로 무력감에 지쳐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상급종합병원이 주 1회 수술과 외래진료를 멈추는 것은 암 환자들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투병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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