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 인공지능(AI)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등 AI 글로벌 주도권을 쥐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국내 AI 발전을 위해 AI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프랑스, 독일, 유럽연합(EU) 등 28개국은 22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원에서 ‘AI 서울 정상회의’ 장관세션을 열고 ‘서울 장관 성명’을 채택했다. 세계 각국이 AI의 안전과 혁신, 포용 증진을 위해 노력하자는 성명이다.
이는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주재한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서울선언’과 맞닿아 있다. 회의에 참여한 정상들은 서울선언에서 “AI의 안전·혁신·포용성은 상호 연계된 목표로서 AI 거버넌스에 대한 국제 논의에 이들 우선순위를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기업도 참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진행된 화상연설에서 “AI는 산업 혁신과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삶과 일하는 방식,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안전하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인공지능(AI)을 만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도 “각 지역의 문화적, 환경적 맥락을 이해하는 다양한 AI 모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네이버는 각 지역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책임감 있는 다양한 AI 모델들이 나와 많은 글로벌 국가가 자체 주권 AI를 확보할 수 있도록 어떤 형태든 기술로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네이버, LG AI 연구원, 카카오, SKT, KT 등 국내 기업과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앤트로픽, IBM, 세일즈포스, 코히어 등 해외 기업 총 14곳은 연계해 열린 ‘AI 글로벌 포럼’에서 안전한 AI 사용을 위한 ‘서울 기업 서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는 명확한 AI 관련 제도가 없다. AI 기본법은 국회에 계류된 채 임기 종료로 폐기될 예정이다. 새롭게 구성될 22대 국회에서의 발의, 통과를 또다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1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이 AI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는 상황과 상반된다.
업계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AI 기본법 제정이 미뤄지면서 기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준점이 없다는 것은 불확실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뜻 투자·개발이 이뤄지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규제가 딱히 없으니 다양한 기술·개발의 길이 열려있지만 향후 법이 제정되고 나면 해당 기술·개발이 불법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자체 가이드라인이 운영되고 있는 대기업과 다르게 스타트업·벤처 등에서는 향후 개발 방향성을 잡는 데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향후 22대 국회에서 재발의 될 법안에 대한 우려도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AI 기본법은 큰 틀에서 AI 산업 육성을 장려하고 있지만, 다음 국회에서는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AI 산업은 빅테크와 격차가 크다. 그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방향으로 AI 관련 규제와 육성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며 “AI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맞춰 경쟁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한 관련 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산업진흥 차원에서 보다 빠른 AI 기본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성엽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국회에서 AI 기본법이 통과되지 못해 아쉽다. 22대 국회에서도 빠른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다만 규제가 아닌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AI 업계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해당 법안이 기업에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