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직서 수리 막을 땐 언제고…말 바꾼 정부에 병원 혼란

전공의 사직서 수리 막을 땐 언제고…말 바꾼 정부에 병원 혼란

정부, 수련병원들에 전공의 6월 사직서만 수리 종용
의료계 “전공의 조직 내부 분열 꾀하는 목적”
“9월 후반기 모집, 진료과별 양극화만 키울 뿐”
“전문의 배출 차질로 내년 군의관·공보의 공백 불가피”

기사승인 2024-07-02 06:00:08
6월2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정부가 수련병원들에 전공의 사직서 수리를 종용하고 있다. 지난 2월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명령 등 각종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사직서 수리 절대 금지’를 고수했던 정부가 전공의 복귀가 요원하자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정부가 병원들에 사직서 수리 압박을 넣는 것을 두고 더 이상 전공의 복귀를 기대하기 어려운 마당에 오히려 문제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주 중으로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처분을 결정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 인턴·레지던트 모집을 위해 결원을 파악하고 충원 인원을 정하기 위해서다. 이는 퇴직금 지급이나 추후 적용될 수 있는 법적 책임 유무, 전공의 재수련 일정 등도 고려한 조치다.

‘전공의 임용시험 지침’을 보면 인턴과 레지던트 1년 차는 해임·사직 등으로 결원이 생겼을 때 모집한다. 레지던트 2~4년 차는 최근 3년간 평균 전공의 확보율이 전체 평균을 밑도는 과목에 한해 선발한다. 이를 위해 각 수련병원은 인원 부족 현황을 파악해 모집 공고를 내야 한다. 각 대학 수련평가위원회가 9월1일부터 수련을 시작할 전공의 모집 대상과 일정 등을 7월 중순까지 확정하라고 공지한 상태다. 모집 규모를 확정하려면 병원들은 늦어도 7월 초까지 복귀자와 미복귀자를 구분해야 한다.

정부는 수련병원들에 전공의 사직서 수리를 종용하고 나섰다. 복지부는 지난달 27일 211개 수련병원 소속 기조실장과 수련부장 등을 상대로 비공개 온라인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는 전공의가 사직서 수리를 원할 경우 2월에 제출한 사직서가 아닌 6월 이후 새롭게 제출된 사직서만 수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6월1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앙수술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이를 두고 의료계는 ‘정부의 꼼수’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2월자로 사직서를 수리하게 되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무력화돼 전공의에게 행정처분을 내릴 수 없고, 이탈 기간도 10일 이내로 단기간에 불과해 전공의에게 병원 업무방해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즉 2월19∼20일에 잇따라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 입장에서 6월 이후로 사직이 처리되면 지난 3개월여간 ‘불법’으로 근무지를 이탈한 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럴 경우 전공의는 그동안의 공백이 ‘무단결근’으로 처리돼 퇴직금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정부가 전공의 조직 내부의 분열을 꾀하기 위해 9월 하반기 모집을 추진한다는 분석도 있다. 소위 비인기과 전공의가 피부과, 성형외과 등 타 병원 인기과 모집에 지원하거나 지방에서 수련 받던 전공의가 수도권 대형병원의 동일 진료과·연차로 지원하게 된다면 형평성 논란이 빚어져 전공의 조직 내부에서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복지부가 규정을 바꿔 9월 후반기 전공의 모집에 동일 과·연차로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현 규정상 사직한 전공의는 1년 내 같은 과목·연차 복귀가 불가하다. 내년 9월에나 복귀할 수 있는데 그나마도 정원이 있을 때나 가능하며, 모집 인원이 다 차면 2026년 3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의료계 연구모임인 ‘바른의료연구소’는 1일 자료를 내고 “정부가 기존 규정까지 바꾸면서 후반기 전공의 모집을 유도하는 배경에는 전공의 사이의 분열을 유발해 이들의 단합을 저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전공의 내부 분열이 일어나면 정책 추진에 반대하는 의지가 약해져 결국 늦어도 내년에는 대다수 전공의가 복귀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월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2024년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전공의들이 참석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부의 유인책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교수들은 정부 대책이 필수의료과 전공의 복귀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진료과별 양극화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2월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정부는 달라진 게 없고, 전공의들이 돌아오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행정조치를 완화한다고 복귀할 것 같지는 않다”며 “9월 모집을 열어놓는다고 필수과 전공의가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결과적으로 일부 수도권 대형병원 인기과에만 지원자가 몰리고 그 외의 나머지 과들은 외면당할 것”이라며 “이로써 의료 생태계 붕괴는 자명해졌다”고 부연했다.

김성근 가톨릭의대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자꾸 편법을 쓰는 것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짚었다.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2월에 냈으면 병원이 그대로 수리하게 해주면 되는데 이를 막는 것이 오히려 정부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비대위원장은 “전공의와 수련병원에 내린 행정명령을 취소하면 될 일을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신뢰를 얻길 바란다. 지금은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승준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든 현재로서 전공의가 복귀할 가능성은 적고, 전문의 배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내년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공백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오 부회장은 “올해 전문의 배출에 공백이 발생하면 내년 공보의 자리를 채울 인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지역의료는 더 나빠질 것”이라며 “군의관도 없어서 국방부 입장에선 군무원 신분의 의사를 채용하던지 아니면 진료공백이 생긴 상태로 운영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의정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고 의료공백 사태 해결은 요원한 사이 환자 곁을 지키는 의료진은 지쳐간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교수들은 눈앞의 환자 저버리지 못해서 몸을 갈아 넣으며 지키고 있는데 정부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고, 의료 현장 상황 파악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의사로서의 자긍심을 다 짓밟아놨는데 전공의가 돌아오고 싶겠는가. 돌아오는 게 이상한 지경이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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