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핵심은 부모가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부담 없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이다. 일·가정 양립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의 모범사례를 찾아봤다. |
국내 건설 근로자 성비는 극과 극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2월 기준 건설업 종사자는 215만3000명이며 남녀 비율은 7대 1이다. 한 쪽으로 치우친 성비와 더불어 높은 업무 강도, 경직된 조직문화는 출생과 육아를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저 출생은 실제로 심각하다.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걸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은 올해 기준 0.68명에 불과하며 이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걸로 통계청은 내다보고 있다. 심각한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소통에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기업이 있어 살펴봤다.
삼성물산 간담회 열고 임신부와 소통
최근 건설업계는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사내 임신부 직원과 소통하는 임부 모성보호 간담회를 열고 있다. 노사협의회에서 시작된 간담회는 사내 여성근로자 모성보호와 일·가정생활 양립 지원활동 발판으로 연 최소 1회 이상 열린다.
간담회는 여성 근로자에게 임신 주기(임신 중·출산전후·육아휴직·복직)별 맞춤제도를 공유해준다. 예컨대 △유·무급근로시간 단축 △태아검진휴가 △육아휴직(임신 중·출산전후) △난임 휴가 △유산 및 사산 휴가 △각종 수당(영아·양육·아동) 등이다.
임신기엔 하루 근로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다. 대상은 임신 12주 이내 또는 임신 32주 이후인 여성이다. 근로기준법으로 보장된 제도로, 부서장 승인이 필요 없고, 유급이다. 아울러 임신 중 육아 휴직이 가능하며, 이 때 휴직 분할 횟수가 차감되지 않는다. 이 또한 남녀고용평등법으로 보장된 제도다.
삼성물산은 자녀 당 최대 휴직기간 2년을 부여한다. 휴직기간은 2회에 한해 분할 사용할 수 있다. 출산 전 4개월은 2개월씩 2번, 출산 후엔 남은 20개월을 7개월·7개월·5개월로 나눠 써도 된다. 육아 휴직 중이라도 리조트·휴양소·경조사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휴직 전 노트북 반납도 택배로 가능하다. 복직해서도 근로시간을 하루 4시간·6시간·7시간으로 조절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다.
전 사우위원인 신정미 프로가 강조하는 간담회 우선 목적도 제도 안내다. 임부가 아니면 매해 달라지는 정부 정책도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 있다. 간담회에서 정책을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노사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한다. 이처럼 제도를 알림으로써 임부로서 마땅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신 프로는 “사내 제도가 있어도 임신하기 전까지는 직원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 얘기가 아니라 그렇다. 그런데 이게 매년 개선되고 있고 첫째 아이를 낳을 때랑 다르고 직장 선배가 임신했던 시기와도 또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근로자들이 업무를 하면서 제도를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순산할 수 있도록 권리나 제도를 최대한 안내해드린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어도 참석 가능…모인 의견, 사측에 전달
본사 간담회는 보통 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 오프라인 간담회는 정보 제공을 넘어 네트워크를 쌓게 해주는 기능도 한다. 업계 특성상 현장에 나가 있는 근로자도 많기 때문에 간담회를 화상으로 열기도 한다.
신 프로는 “간담회가 단순히 자료를 알려드리고 VOC(Voice Of Customer)를 듣는 것을 넘어 같은 시기에 임신한 같은 처지에 계신 분들끼리의 커넥션을 만들어 드리는 것도 간담회 목적이라고 생각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에 계신 인부를 직접 만나 뵙기 힘들어서 간담회를 화상으로도 진행하는데 어떤 분은 시기가 안 맞아 간담회에 참석을 못하는 분도 있다. 또 현장에서 느끼는 힘든 점들은 마음 편하게 듣는 게 쉽지 않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전했다.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은 전체 메일링이나 인트라넷을 거쳐 사측에 전달된다. 하지만 모든 의견이 수용되는 건 아니다. 신 프로는 “간담회를 운영하면서 현장에 계신 분들을 일일이 못 만나는 게 가장 힘들었고 VOC 개선 협의가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다”라며 “그럴 때 피드백을 드리지 못해 곤란하고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간담회에서 요청이 나왔던 ‘가족돌봄휴가’ 반일 사용이 올해부터 급여 처우에 반영됐다. 가족돌봄휴가는 질병, 사고, 노령 또는 자녀 양육으로 인해 가족 돌봄이 필요하면 연간 최대 20일까지 쓸 수 있다. 이전까지는 일 단위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0.5일 사용이 가능하다.
현장 양육 지원 필요…“‘건설사라서 당연하다’는 인식 개선해야”
신 프로는 현장 양육 지원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 예로 본사와 달리 현장에선 이동이 잦다보니 사내 어린이집을 구축하기 어렵다. 삼성물산은 대신 자율출근제도를 도입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이면 누구나 자율출근제도를 쓸 수 있다.
그는 “건설사라 현장에서 양육하는 직원이 남녀 가리지 않고 굉장히 많고 삼성물산도 남직원 육아휴직률이 계속 올라갈 정도로 남성분들도 가정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며 “하지만 현장근로자들은 일·가정 양립이 조금 어렵려워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협의회는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는 당연하다’라는 인식 또한 개선해나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물산은 임부 모성보호 간담회 말고도 육아휴직 복직자 간담회도 운영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육아휴직 때 느낀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한다. 남직원을 대상으로 한 복직 간담회 경우 참석률이 10배 늘었다. 이용자 만족도도 굉장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간담회 담당자는 “건설회사 특성상 현장, 본사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임부들이 근무 중”이라며 “여러 근무 상황속의 임부들과의 소통으로 임부를 위한 더 나은 근무환경, 근무제도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회사와 논의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임부는 간담회로 의견을 전달하고, 회사는 상황별 임부 근무 환경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라며 “전체 임직원 중 모성보호대상자는 어찌 보면 소수 인원이기 때문에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프로는 저출생 대응을 위한 기업 역할도 언급했다.
신 프로는 “국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고 제 자녀 세대엔 저출생 가속화는 조금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결국 기업이 입을 것”이라며 “특히 건설업은 자동화 가 어렵고 사람들이 직접 관리를 해야 되는 일이 줄을 이루기 때문에 극심한 인력난이나 고령화를 좀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 한다”고 전망했다.
그는 “일·가정 양립을 ESG나 사회적 책임 정도로 여긴다면 인력이 부족해서 타의로 기업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업은 일·가정 양립을 기업 존폐를 논하는 장기 리스크로 인지하고 양육하는 직원들과 함께 고민하는 게 당장 필요하지 않나 생각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