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참 늦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의 최종안 발표가 또 늦어지고 있다. 전례 없는 폭염으로 급증하고 있는 전력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에너지 중장기 정책의 수립이 우선적으로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7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최근 환경부는 11차 전기본 초안에 대한 전략환경·기후변화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에 ‘보완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산업부는 11차 전기본 실무안이 국가 환경정책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 국제환경협약 및 규범 등에 부합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 대상인 환경부에 지난달 11일 초안을 전달했다.
만약 부처 간 협의가 예정대로 이뤄졌다면 지난 20일이었던 부처 협의 시한에 맞춰 최종안을 작성하고, 공청회 및 국회 보고 등 이후 절차가 진행돼 오는 10월 국정감사를 전후로 최종안이 발표됐을 것이나, 보완 요청에 따라 관련 일정이 일제히 밀릴 예정이어서 빨라야 국감 이후인 11월에나 최종안이 나올 전망이다. 일각에선 상황에 따라 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보완 요청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간 업계에서 지적됐었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론 등 세부 사항이 요구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올해부터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전기본에 대한 기후변화영향평가도 처음으로 실시돼 이에 대한 협의도 이뤄져야 하는데, 기후변화영향평가 평가 항목 중에도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및 온실가스 감축 방안’ 등 조건이 있다.
전기본이 향후 15년간 우리나라의 에너지안보를 책임질 중요한 정책인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지만, 당초 지난해 하반기에 나왔어야 할 최종안이었기에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7월, 뒤늦게 11차 전기본 총괄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 해 말까지 초안을 내놓은 뒤 최종안은 늦어도 올 상반기 안에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여야의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지난 4월 총선까지 겹치면서 올 5월에야 초안이 발표됐다.
전기본은 재생에너지, 수소, 천연가스 등 각종 에너지 계획의 기본방향 및 장기전망과 더불어 발전 비중 목표, 송배전망 등 전력계통 확대 계획, 전력수요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전력수요관리 계획 등 근간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역대급’ 폭염으로 전력 총수요가 100GW(기가와트)를 돌파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되는 등 현재 전력수요관리와 전력망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해외 주요국에선 에너지안보 선점을 위한 전력 정책 추진에 한창이다. 미국은 지난달 ‘원전 배치 가속화 법안’을 발효, 원전 건설기간 단축 및 사업자 비용 부담을 절감해 원전 전력 확보에 나섰으며, 프랑스·이탈리아 등 EU(유럽연합) 주요 국가들도 ‘통합 국가 에너지 기후계획’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원전 비율을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11차 전기본 실무안 기준 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는 21.6%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최저 수준이어서, 전력 정책 수립 속도뿐만 아니라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는 OECD 국가 기준 영국 85%, 독일 75%, 미국 59%, 일본 38%에 달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완 요청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반려’의 개념은 아니고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계획 수립이 시급한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보완 내용에 대해서도 산업부와 대화를 통해 불필요한 과정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4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통해 “다른 나라들보다 현저히 낮은 신·재생에너지 비율, 기후위기,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2050 탄소중립 목표를 고려해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보급 계획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면서 “전기본에 따라 적정한 시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부족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