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의정갈등 공회전만…대척점 선 의료개혁

꽉 막힌 의정갈등 공회전만…대척점 선 의료개혁

기사승인 2024-10-10 17:42:59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 박희택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 기조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은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 연합뉴스

의정 갈등이 8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참여하는 의정 간 첫 공개 토론회가 열려 관심이 집중됐지만 의료개혁 정책에 대한 ‘숙론’은 없었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이 적절했는지 잘잘못만 따지고 고성과 비난만 오고 간 자리였다.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 그리고 의사단체가 의료개혁을 주제로 공개 토론에 나섰지만 올바른 의료개혁 방향에 대한 논의는커녕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대통령실과 복지부는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인 만큼 그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의료계는 의사 수를 늘리기보다 의료 환경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 대해 “충분한 과학적 근거로 도출했다”며 “실제로 필요한 증원 규모는 4000명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 수립 근거로 삼은 3개 보고서의 ‘비현실적인 가정’을 보완했을 때 2000명 증원은 필요한 ‘최소 숫자’라는 설명이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의사는 90세까지 똑같은 생산성을 유지한다든지, 모든 의사가 주말을 빼고 1년 265일 줄곧 일한다는 연구보고서의 가정을 보다 현실에 맞고 보완했다”라며 “결론적으로 부족한 의사 수는 2035년 1만명이 아니라 2배 이상 늘어나며, 2000명이 아니라 사실상 최소 4000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 추진 과정이 일방적이었다는 의료계 비판에 대해선 “문제가 없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장 수석은 “정부는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을 지난 2023년 1월부터 공식화해 추진해 왔다”면서 “대한의사협회 등과 별도 협의체를 만들어 증원 문제만 37차례 협의했다. 발표 직전 공문으로 여러 단체에 의사를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유일하게 종합병원협의회만 ‘3000명 증원’이란 답을 줬다”고 짚었다.

장 수석 발언 중 청중석에선 고성이 나오기도 했다. 한 의대 교수는 “2000명이 늘어나면 무슨 진료과가 몇 명이 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나”라며 소리쳤다. 이에 장 수석이 ‘의료계가 적정 증원 규모에 관해 답을 주지 않았다’라고 하자 의대 교수는 “그건 거짓말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장 수석은 “발제할 시간을 달라”면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복지부도 장 수석 발언에 힘을 실었다.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인구가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정부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향후 10년을 지역·필수의료 위기와 의료수요 급증에 대응하고, 베이비부머 세대 의료 인력이 대량 은퇴하는 것에 대비하는 마지막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 박희택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른쪽은 하은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원. 연합뉴스

반면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의사 수가 적다고만 할 수 없다”고 피력했다. 국내 의사 수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에 비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부족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는 한국이 2.6명, OECD 평균은 3.8명이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원장은 “‘불필요한 병원 이용을 줄이자’, ‘병원에 갈 필요가 없게 하자’, ‘건강 수명을 늘리자’ 등이 (의사 부족에 대한) 첫 번째 대책이 돼야 한다”라며 “불필요한 병원 이용을 줄이면 ‘3분 진료’도 없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환자 80% 이상은 의사와의 상담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면서 “3분 진료는 의사 수와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강 위원장은 “의료비용을 시뮬레이션해보면 오는 2030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16%를 써야 하고, 2035년에는 20%를 쓰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의료를 잘 개선해 억제하면 유지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곳에 의사가 갈 수 있도록 해주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의료개혁특위에 대해선 “지금 하는 개혁이 국민을 위한 것이 맞는가.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라며 “우리 (의료계)가 바라는 의료개혁은 지속 가능하고 환자 중심이었으면 좋겠다. 또 다함께 합의한 뜻을 모아 만든 의료체계였으면 한다”라고 제안했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인 하은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원은 “정부의 무리한 정책에 의료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 위원은 “정부의 처방은 한국 의료의 취약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과도한 개혁 조치나 급진적인 변화 시도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면서 “한국 의료는 이제 부작용을 견딜 수 없다. 국민과 정부, 의료계가 한 팀이 돼 신뢰를 투명하게 논의하고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 대해 의료계 일각에선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료대란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들이 사태 해결을 위한 자리에 나와서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면서 “서울의대 비대위가 전체 의료계를 대변할 수 있는 위치인지도 모르겠다. 실망스러운 토론회였다”고 평가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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