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여배우 자살…매니저 증언에 비쳐본 ‘그들을 죽음으로 모는 것들’

신인 여배우 자살…매니저 증언에 비쳐본 ‘그들을 죽음으로 모는 것들’

기사승인 2009-03-11 10:36:02

[쿠키연예]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자택에서 목을 맨 장자연이 생전에 남긴 글 중 한 부분이다. 故장자연은 자살을 택하기 1주일 전 쯤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장문의 글을 지인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경고백서를 전달받은 지인들이 고인과 유족의 뜻을 살펴 문서를 공개하고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 두 문장만으로도 고인이 생전에 얼마나 여배우로서의 삶에 고통 받았는지 헤아릴 수 있다.

故장자연은 생전 자신에 대해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라고 표현했다. 고인은 올해 초 KBS 2TV 인기 월화극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며 악녀 3인방 중 박선자 역으로 주목받았고, 지난해 출연한 영화 ‘그들이 온다’와 ‘펜트하우스 코끼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처럼 부푼 꿈을 안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어도 될 신예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신인배우로서 겪는 고통이 얼마나 컸기에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장자연의 전 매니저인 호야스포테인먼트 유 대표의 글을 보면 고인이 생전에 신인 여배우로서 당했던 고통이 컸음을 가늠할 수 있다. 유 대표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또 다른 희생양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자연이의 뜻에 따라 (자필 문서를) 공개해야 할지, 유가족의 뜻대로 덮어두는 게 나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서 “연예계 종사자는 자연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자연이는 자신을 대변해 줄 사람으로 나를 선택했기에 끝까지 싸워서 밝혀낼 것”이라고 비통한 심정과 투지를 표명했다.

고인은 죽음으로 신인 여배우의 고통을 마감했다. 문제는, 고인이 우려했듯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제2의 장자연’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신인 여배우로서 겪어야 할 일종의 ‘통과 의례’(?)가 아직도 연예계에 성행하는 것일까.

쿠키뉴스에서는 20년 가까이 연예 매니지먼트 업계에 종사해온 관계자들의 증언을 빌려 신인 여배우로서 겪는 고통과 피해에 대해 살펴봤다. 일부 사례가 신인 여배우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기는 어렵겠으나,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을 살펴봄으로써 제2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취재를 기획했다.

매니저1: 신인 여배우들이 당하는 3가지 고통

배우가 하고 싶었던 신인 여배우들이 마음 편히 연기만 하지 못하고, 연기를 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연기 외의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또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은 무엇일까.

톱 탤런트 K씨를 매니지먼트 했던 모 실장은 신인 여배우들이 겪는 고통을 3가지 정도로 분류했다. ‘몸’을 달라는 광고주의 요구, 돈을 달라는 제작사 그리고 외로운 가정환경이 주는 심적 고통을 들었다.

물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연기로 승부하며 오랜 시간 묵묵히 기다리는 배우들이 있고, 배우들에게 광고주와 제작사의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지 않는 선의의 연예 기획사가 더 많다는 전제에서 입을 열었다.

“작은 것이라도 CF에 출연해야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보니 신인에게 광고가 중요합니다. 잠자리를 요구하는 일부 광고주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거죠.”

그는 또 캐스팅의 대가로 돈을 달라는 몇몇 제작사의 요구도 신인들을 곤란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주연급은 이미 정해져 있어 넘볼 수 없지만 신인들이 할 만한 조·단역이 있을 경우 수천만 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많은 신인 배우들이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요. 돈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적 지원을 해줄 소위 ‘스폰서’를 구하게 되는 거예요. 스폰서는 결국 잠자리로 이어지니까, 결국은 돈을 달라는 요구도 몸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겁니다.”

어렵사리 마련한 자리라고 해서 ‘안락’하지만은 않단다. 연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일들이 많다. 연기력을 키우기 위해 매진하고, 함께 일하는 스태프나 동료 배우들과의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애쓰고, 보다 영향력 있는 소속사에 둥지를 틀어야 하는 등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첩첩산중이다. 쏟아 부은 것이 많기에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중압감은 크지만 그러한 스트레스를 풀어내기엔 주변에 사람이 없다.

“자신의 성공도 일궈야하고 가정 경제도 책임져야 하는데 그런 힘겨움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거죠. 혼자 사는 경우도 많고 가정환경이 외로운 거예요. 심적 스트레스는 점점 쌓이는데 그 때 그 때 풀어내고 격려 받고 할 사람이 없다면 더 힘들 수밖에 없죠.”


매니저2 : 신인이라서가 아니라 여자여서 당하는 고통이다

T 엔터테인먼트의 모 대표는 모종의 ‘거래’가 이뤄지는 ‘만남’에 대해 밝혔다.

T 엔터테인먼트 대표에 따르면, 흔히 신인 여배우들이 당하는 연기 외적 고통은 캐스팅 파워를 가진 자와 캐스팅을 원하는 쪽이 함께 하는 ‘술자리’를 통해 매개되고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훨씬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7080년 식 방식을 고수하는 분들이 있어 관행으로 굳어진 악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역을 맡기 위해 자신의 존재 자체와 재능을 각인시켜야 하는 신인 배우의 입장을 악용해 ‘어디서건 너의 재능과 끼를 보여줘야 캐스팅이 될 것 아니냐’ ‘대낮에 사무실에 불려나가 앉아, 일어서, 벗어, 돌아봐 따위를 당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너의 탤런트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낫지 않느냐’는 말로 술자리를 합리화해 일명 ‘콜’을 한다.

부름을 받은 신인 배우는 ‘내가 꼭 이렇게 해서까지 연기를 해야 하나’ 자괴감에 빠지면서도 부름에 응한다. 여기에는 “톱스타 A씨는 이보다 더한 것도 견뎠다. B씨도 성공하고 나니 아무도 손가락질 않더라. 수모는 잠시다, 중요한 것은 성공하면 되는 것”이라는 연예계 관계자들의 부추김도 한 몫 한다.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이왕 시작한 일, 성공해야 할 것 아니냐”는 유혹이나 강압도 부담감을 가중시킨다. 이전부터 존재해왔고 누구나 거치는 관행이라는 설명, 당연시 여기는 주변의 말들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마치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정의’(옳은 것)처럼 받아들여진단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정의’는 없죠. 그런 사례가 많다고 해도 되는 것이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잖아요. 자리에 나온 당사자도 누구보다 이런 사실을 잘 알 거예요, 그러니 누구한테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도 없고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죠.”

이어 “이러한 수모는 신인 연기자여서 당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자이기에 받는 고통”이라고 밝혔다. “요즘에는 남자배우들에게도 더러 ‘콜’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여전히 여배우들이 주요 피해자”라는 것이다. 캐스팅 파워를 쥔 이가 주로 남자인 탓이다.

술자리가 주어져서 참석했든 먼저 요구해 자리를 만들었든 결과적으로는 ‘가해자’가 된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사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다 보면,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는 상황이 됩니다. 흔히 말해 가해자 측에서도 ‘아마 걔들도 이런 자리인 줄 알고 나왔을 거야’라고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게 되죠. 별다른 죄의식이 생기지 않게 되는 분위기가 되는 겁니다.”

중견 연기자 : 밝히라고? 몇 십 배의 화살이 돌아올걸

이러한 상황에 대해 중견 연기자 A씨도 공감했다. 그는 “설령 그런 피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말없이 견뎌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또 “캐스팅 시스템 자체가 그 주도권이 방송사에서 제작사와 기획사로 이동하면서 입사 기수 별로 배역이 배분된다거나 공개적으로 오디션이 이뤄지는 식이 아니라 ‘물밑 거래’가 많아진 게 사실이어서 신인 배우들은 연예계 관계자들의 요구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 같다”고 답했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모욕과 수치의 경험을 일종의 관례로 받아들인 일부 신인 배우들은 성상납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을 함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피해자임을 밝히는 경우, 진상이 밝혀지고 가해자가 처벌되기는커녕 ‘몇 십 배의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로 비난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연예 기획사 대표의 현장 발언, 중견 연기자의 확인으로 드러난 신인 여배우가 당해야 하는 연기 외적 고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중한 한 생명이 세상을 등진 것을 계기로,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었든 매개했든 관여했든 ‘어떤 식으로든’ 여배우들이 살아가기에 벅찬 환경을 만들었던 모든 관계자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자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 편히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날, 故장자연 씨가 편안한 영면에 드는 날을 희망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김은주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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