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성 강한 영화 ‘똥파리’…양익준에게 빠져들다

중독성 강한 영화 ‘똥파리’…양익준에게 빠져들다

기사승인 2009-04-16 12:28:01

[쿠키 영화] 탐정(그림자살인), 끝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와 스토커(우리집에 왜 왔니), 국정원 요원(7급공무원), 미술복원가(인사동스캔들), 뱀파이어가 된 신부(박쥐) 등 4월에 관객을 찾는 한국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채롭다. 영화 ‘똥파리’에도 낯설고 독특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똥파리’다.

한국영화 속에서 흔하게 봐오던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은 여타의 화제작들과 다르지 않지만, ‘똥파리’ 상훈은 근본부터 궤를 달리한다. 타 영화의 독특한 캐릭터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통해 영화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높은 창의성이 신선함으로 결과된 것이라면, 상훈은 특별할 것 없는 그 이름처럼 우리 사회에 있음직한 인물이지만 카메라 앵글 안에 자주 담겨온 캐릭터가 아니라는 사실이 신선도를 높인다. 양익준이 아니면 누가 카메라 안으로 들여왔을까 싶은 삶, 여기에 영화 ‘똥파리’의 영화적 위대함이 있다.

어쩌면 양익준 감독이나 적잖은 사람들은 ‘우리에게는 일상일 뿐인데 마치 관찰자처럼 그 생경함에 호들갑을 떤다’고 언짢아 할 지도 모르겠다. 고백하건데, 영화 ‘똥파리’를 보며 잊어버리고 싶었고 그래서 잊었던, 봉인된 기억 속이 많은 상처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상처가 치료됐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무조건 덮어두는 게 아니라 햇볕과 바람에 거풍시키는 것으로 치유의 작업이 시작됐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영화 ‘똥파리’는 세상 외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변두리 인간 상훈과 연희, 영재와 형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그렇게 다가선다.

영화 ‘똥파리’는 해체된 가족, 슬픈 가족사가 인간에게 남길 수 있는 지옥 같은 상처를 날 것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그 잘라내 버리고 싶은 핏줄과 없는 게 나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구성체에서 희망을 찾는다. 이 진부한 이야기가 새로운 감동을 주는 것은 누구를 통해, 어떻게 이야기 했느냐가 기존의 가족영화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여러 가지 힘겨움으로 날이 서있지만 결국엔 행복했던 옛날로 돌아가는 식이 아니다. 그들에겐 행복했던 옛날이 없다. 한줄기 희망의 빛조차 없어 없는 굴다리 아래 인생들이 ‘맛 본 적 없는’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은 자못 감동적이다. 또 ‘하물며 상훈과 연희에게 희망이 있는데 나에게는 없겠는가’라는 위안이 어느새 마음에 자리 잡는다. 영화 ‘똥파리’의 크나큰 미덕이다.

행복을 찾아가는 그 과정은 결코 따뜻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차마 글로도 옮길 수 없는 욕설이 끝없이 이어지고 끝까지 눈 뜨고 보기 힘든 구타가 난무한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놀라운 것은 어느새 그 욕과 구타가 자연스러워진다. 결코 여러 번 듣고 보다 보니 익숙해져서가 아니다. 내 가족과 친구, 세상의 이웃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일종의 소통 수단으로 자연스레 습득한 것이 욕과 구타라는 생각에 미치면 어느새 언어적 육체적 폭력은 ‘슬픈 노래와 몸짓’이 되어 눈귀 귀를 적신다. 욕이 거칠어지고 구타가 잔인해질수록 주인공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을 인두로 지진 것 같은 흉터와 허한 구멍의 크기를 가늠하게 된다. 타 작품들을 통해 흔히 경험할 수 없는, ‘똥파리’가 선사하는 영화적 경험이다.

자칫 ‘똥파리’를 무겁고 슬픈 영화라고 오해할 수 있겠다. 단언컨대, ‘똥파리’는 매우 발랄하고 아주 재미있는 영화다. 삶에 대한 묵직한 성찰을 감독은 사납고 거칠게 담았는데, 관객은 웃음과 함께 관람하고 따뜻함으로 기억하게 되는 묘한 영화다. 양익준 자신이 봉순 씨(김해숙 분)의 하숙생으로 출연했던 영화 ‘경축! 우리사랑’처럼 직시하기에 결코 편하지 않은, 아니 불편함에 틀림없는 진실을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웃음과 함께 전달한다.

안정된 연출, 집중력 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도 관람의 만족도를 높인다. 먼저 2005년 단편영화의 주연배우로 영화 이력을 시작한 양익준은 신인감독답지 않은 깔끔한 화면구성과 스토리 전개로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각본, 편집, 연출력 뿐 아니라 리얼(실제)인지 리얼리티(실제감)인지 헷갈릴 정도로 양아치를 제대로 표현해낸 연기력으로도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영화를 보노라면 양익준이라는 배우에게 중독되기 십상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연희의 표현처럼 ‘입에 욕을 물고 다니는’ 상훈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설득력 있는 연기를 펼친다.

상훈이 툭 뱉은 침이 자신의 교복 넥타이에 튀었다며 ‘해결하고 가라’고 말하는 당찬 여고생 연희를 연기한 김꽃비도 인상적이다. 똑바로 쳐다보기도 무서운 생양아치에게 주눅 들기는커녕 되레 큰소리치는 연희를 생생하게 연기한 덕에 2009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상훈의 오랜 친구이자 떼인 돈 받아주고 시위도 진압해주는 용역업체 사장 만식 역의 정만식의 편안한 연기도 영화에 안정감을 준다. 드라마 ‘주몽’에서 어린 유리의 친구 상천을 연기했던 이환은 연희의 남동생 영재를 맡았다. 1981년생 적잖은 나이에도 연거푸 십대를 연기할 만큼 선해 뵈는 외모가 폭발적 광기로 돌변하는 순간을 목격케 한다. 영재의 친구이자 만식이네 사무실의 직원인 환규의 넉살 좋은 연기도 웃음을 보탠다.

영화 ‘똥파리’는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이 큰 불행을 마주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가난 중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행운을 역설적 제목으로 표현했다면, 영화는 고통으로 점철돼 행복이 보이지 않는 나날이 끝나고 자잘하지만 소중한 일상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 덮쳐오는 커다란 불행을 포착하고 있다. 소설도 영화도 주인공에게 행복을 허락지 않았지만, 관객의 몫으로 ‘희망’은 남아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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