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지 못하는 강을 따라 걷는다…한중 우호 압록강 걷기대회 D―93

건너지 못하는 강을 따라 걷는다…한중 우호 압록강 걷기대회 D―93

기사승인 2009-06-12 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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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지난 주말 기자는 압록강변에서 미간을 찡그린 채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오의 햇빛이 눈을 찔렀고, 시선 아래로 흐르는 너비 800m 안팎의 강은 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를 갈랐다. 청둥오리의 대가리처럼 짙푸르대서 압록(鴨綠)이란 이름을 얻은 강이었다.

여전히 짙푸른 압록강은 길이가 803㎞로 한반도에 흐르는 물길 중 가장 길다. 중국에선 양쯔강·황하와 함께 3대 강에 든다. 이 강을 건너야 한반도 북단에 갈 수 있지만 되려 지금은 한국 사람이어서 건너지 못하는 강이었다. 그런 강을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걷는 모습을 석 달 뒤 강 건너 북한 주민들은 보게 된다.

압록강 걷기 대회 93일 앞으로

제3회 한·중 우호 압록강 걷기 대회가 오는 9월13일 ‘대륙의 끝’ 단둥시 압록강변에서 열린다. 본보와 단둥시, 대한걷기연맹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여행사 에스앤비투어가 주관하는 행사다. 북한이 보이는 강변을 한국인과 중국인이 함께 걷는 이번 대회는 민간 차원의 ‘스포츠 교류’를 통해 나라 간 유대를 다지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못 건너는 강을 맴돌며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느낄 한국인에겐 신의주로 가는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는 시간이다.

걷는 길은 압록강 공원 일대를 왕복하는 코스(5㎞)와 압록강 공원에서 출발해 단둥 북쪽의 호산장성까지 가는 코스(20㎞)로 나뉜다. 5㎞ 코스는 1시간 안에, 20㎞는 5시간 안에 걸어내면 된다. 일상에서 사람들의 걸음은 시속 4∼5㎞이고, 서두른다 싶으면 시속 7∼8㎞이므로 평소대로 걸어도 제시간에 종점에 가 닿는다.

어느 코스든 첫발은 끊어진 압록강 철교 아래서 내딛는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고 있어야 할 잿빛 쇠다리는 6·25 때 미군 폭격기의 폭탄 세례를 받고 절반이 끊겨 나간 채로 남아 있다. 단둥에서 뻗어가다 압록강 한가운데서 끝나는 다리의 동강 난 단면은 쥐어뜯긴 납 조각 같았다. 다리 곳곳은 달걀 크기의 총탄 자국으로 움푹 패거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다리가 멈춘 곳에서 보이는 풍경은 강 위로 징검다리처럼 솟은 5개의 석조 교각과 신의주다.

신의주→위화도→호산장성→일보과

건너지 못하는 다리를 뒤로하고 강변을 따라 상류 쪽으로 걸어가니 강 위에 널따랗게 떠 있는 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1388년 5월 요동을 정벌하라는 왕명을 받고 출군한 이성계가 군대를 돌린 위화도다. 역성혁명의 기점이던 섬은 단둥과 신의주 사이가 벌어지는 틈을 메우고 있었다.

위화도를 지나자 푸른 물빛은 더 짙어졌다. 하류로 갈수록 강은 밀려드는 바닷물 탓에 흐려진다고 현지 가이드는 설명했다. 압록강의 제 빛을 보려면 상류로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5㎞ 코스는 위화도를 지나기 전에 발걸음을 돌리지만 고구려 산성의 옛터인 호산에 올라 보려면 걸어온 길의 8배를 더 가야 했다. 걸어간 2.5㎞를 다시 걸어오는 5㎞ 코스와 달리 20㎞ 코스는 반환점이 없다. 종점인 호산까지 걸어가서 돌아올 땐 버스를 탄다.

3시간반을 걸어 단둥 북쪽의 북한 접경 지역에 다다랐다. 만리장성을 빼닮은 성벽이 산등성을 타고 꼭대기까지 뻗어 올라 있었다. 호산장성이다. 5년 전 중국 정부는 고구려 산성인 박작성의 흔적과 당시 유물이 남아 있던 산에 돌을 쌓아 올려 이 성을 지었다. 중국은 만리장성의 길이가 종전(6300㎞)보다 길어진 8851.8㎞라고 주장하면서 호산장성을 끌어들였지만, 성은 호산 기슭에서 끝난 뒤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장성 초입에서 정상까지 부단히 걸어 오르면 40분쯤 걸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봉화대가 솟아 있고, 길은 때때로 가파르다. 왼쪽 난간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땅은 신의주다. 농사짓는 북한 주민과 그들이 사는 집들이 있었다. 가이드는 “곳곳의 초소에서 북한 병사들이 보고 있으니 사진을 너무 눈에 띄게 찍진 말라”고 했다.

북한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은 호산 남쪽 기슭이었다. 국경을 따라 흐르는 강의 폭이 5∼6m에 그쳤다. 세 살배기가 던진 돌도 북한 땅에 떨어질 거리다. 강둑엔 한자로 일보과(一步跨)라고 새겨진 바위가 북한을 등지고 섰다. 한걸음에 닿을 만큼 가깝다는 곳을, 사람들도 가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으로

걸어야 할 길을 다 걷고 나면 주몽이 나라를 세운 곳으로 알려진 환인(옛 졸본), 유리왕이 수도를 옮겨 간 집안 등 고구려 유적지나 백두산 등지로 간다. 사람들은 집안과 환인을 모두 둘러보고 봉성의 봉황산에 오르는 고구려 루트와, 백두산을 등반한 뒤 환인 지역을 탐방하는 백두산 루트로 갈라서야 한다.

환인 지역엔 고구려가 세워질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돌로 쌓은 고구려 성인 오녀산성이 납작하게 업드려 있고, 고분군이 그 일대에 흩어져 있다. 부여에서 탈출한 주몽이 건넜다는 혼강(옛 비류수)은 오녀산성에서 내려다보인다. 이 강에 살던 자라와 물고기가 부여 군사에 쫓기는 주몽을 위해 몸으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의 현장이다. 이 강 위쪽에 주몽은 도읍을 세웠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집안에선 국내성 성벽을 비롯해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 등 굵직한 고구려 유적들을 한꺼번에 만난다. 중학생 시절 달달 외워야 했던 교과서 속 활자의 실체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또 다른 지역 봉성에선 수나라 60만 대군을 막아낸 고구려 오골성의 터가 남아 있는 돌산, 봉황산을 탄다.

백두산은 일단 꼭대기인 천지까지 올라간다. 안개가 워낙 심한 곳이어서 천지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금강대협곡도 볼거리다. 백두산에서 터져 나온 용암이 흘렀던 이 깊고 좁은 골짜기는 풍화 작용으로 다듬어졌다.

이번 행사를 함께 준비하는 단둥시 체육국의 요우커룽(姚克榮·56) 부국장은 “압록강과 백두산, 단둥 일부 지역은 한국인에게 매우 크고 깊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신의주까지 포함한 코스를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까지 함께 걷는 날이 곧 오지 않겠느냐”는 말로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짚어냈다. 단둥=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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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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