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6·25 전쟁 같은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적기념관을 건립해 달라고 대통령에게 건의했었지요.”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자리잡은 ‘다부동 전적기념관’. 이곳은 한국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우리나라를 지켜낸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요즘 세대들에게 호국·안보교육의 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기념관은 한 여성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아예 세워지지 못했다.
현재 전적기념관 옆에 살고 있는 정순덕(68·사진)씨가 바로 이 전적기념관을 건립한 주인공이다.
28년 전인 지난 1980년 12월. 당시 칠곡군 새마을부녀회장이었던 정씨는 군 농민대표 자격으로 청와대의 초청을 받았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200여명의 참석자들과 만찬을 끝내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지만 긴장한 탓에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침 이순자 여사 옆자리에 앉았던 정씨에게 전 대통령이 “정 여사! 건의할 게 있으면 하십시오.”라고 권유했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긴장했던 정씨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 겨우 입을 열었다.
“제가 살고 있는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이 “아! 그 동네 잘 알고 있지요.”라고 맞장구를 쳐 줬고 용기백배한 정씨는 말을 이어갔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젊은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살리고 후손들에게 교육의 현장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전적기념관을 세워주십시오.”
“아주 훌륭하신 생각”이라고 칭찬한 전 대통령은 즉석에서 흔쾌히 건립을 약속했고 참석자들은 일제히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63년 이곳에 정착한 정씨는 6·25 전쟁에서 큰오빠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오래전부터 전적기념관 건립을 꿈꿔왔고 마침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처음엔 기념관 건립을 반겼던 동네사람들은 공사가 본격화 되자 농지를 빼앗긴다며 부지 편입을 거부하고 나서는 등 어려움도 많았지만 정씨를 비롯한 추진위원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결국 기념관 사업은 추진됐다. 정씨는 공사에 투입된 군 장병 50여명의 식사를 1년 동안 무보수로 직접 챙기는 등 헌신적으로 도왔고 81년 11월 마침내 준공식을 가졌다.
준공식에는 국방부장관과 함께 6·25 당시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했던 백선엽 장군도 직접 참석했다. 백 장군은 준공식에 참석하기 전에 정씨 집을 찾아 “내가 해야 할 일을 젊은 색시가 해냈다”며 정씨를 얼싸안고 눈물까지 훔쳤다. 준공식 직후 “기념관 주변에 정씨 비석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순덕’이란 이름 은 기념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정씨는 자신에 의해 기념관이 세워졌지만 정작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곳에 존재가 점차 잊혀가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하다.
“기념관이 어떻게 건립됐는지를 관람객들이 알 수 있도록 조그만 안내문이라고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정씨는 “애국 선열들을 생각해서라도 국민들이 힘을 한데 모아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칠곡=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재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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