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선총독부, 탄광촌 징용 노동력 착취 발악…잇단 탈영에 경고문까지

[단독] 조선총독부, 탄광촌 징용 노동력 착취 발악…잇단 탈영에 경고문까지

기사승인 2009-08-14 22:16:01


[쿠키 사회] '조선의 특별지원병은 자기 가족 일이나 자기 이익도 불구하고 나라(일본제국)를 강하게 하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군무에 복역하고 있습니다. 제군도 지원병과 다름없이 조선서 선발된 산업전사가 되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기어이 돌아오지 않고는 안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에는 재계약을 이어서 일할 결심을 하여 주시기를 생각합니다. 그 계약은 3년이나 5년이나 긴 것이 좋습니다. 속히 가족을 불러서 지금 일을 계속하는 것이 훌륭한 황국신민이올시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일본 내 탄광촌에서 일하던 조선인 징용자들에게 조선총독부가 이러한 지침을 내린 사실이 14일 드러났다. 1941년(소화16년) 10월1일자로 보내진 문서에서 총독부는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선발된 산업전사' '훌륭한 황국신민' 등의 말로 조선인 징용자를 부추기고 있다. 자신들의 전쟁에 가담하도록 독려하면서 사실상 착취인 징용을 정당화한 것이다. 노동력 누출과 체제 동요를 막아 식민 통치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해당 문서는 강제징용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인 김문길(64) 부산외대 일어일문학과 교수가 최근 일본 후쿠오카 석탄박물관 내 탄광 자료실에서 찾아내 본보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문서는 수신자인 조선인 징용자들을 '산업젼사졔군(産業戰士諸君)'으로 지칭했다. 발신자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로 돼 있다. 글은 가로 30㎝, 세로 10㎝ 크기의 직사각형 종이에 먹으로 쓰여 있다. 본문은 일본어와 한글로 각각 11문장에 31줄씩이다.

이 문서에서 총독부는 "전쟁에 이기자면 나라의 힘을 강하게 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나라의 힘을 강하게 하자면 … 석탄과 광석을 파는 일은 특히 대절(아주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석탄을 비롯한 화석 연료는 전쟁을 치르는 일본에 가장 주요한 군수물자였다. 어느 탄광에서든 캐는 일은 징용된 조선인이 도맡고 있었다. 온갖 궂은 일에 동원된 조선인은 제국주의 전쟁의 중심에 뛰어든 일본에 없어서는 안될 동력원이었던 것이다.

문서에서 총독부는 "그런데 제군 중에는 무단으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이 있고 또 쟁의를 일으킨다는 일을 북해도(홋카이도)에서 통지 받은 일이 있다"면서 "모쪼록 지금부터는 그런 부덕한 사람이 없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탄광촌에서는 이탈자가 잇따를 수밖에 없었다. 작업 환경이 열악했고 노동 강도는 극심했다. 징용자들은 사고를 당하거다 병을 얻어도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 채 앓다 죽어 가야 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발버둥친 조선인을 '부덕한 사람'으로 몰아붙인 총독부는 "제군은 동료나 직장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고 경찰서나 협회, 회사 사람의 지도를 잘 듣도록 하고, 또 새로 그곳에 가신 분은 선배의 가르침을 잘 좇아 모든 분과 같이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어 즐겁게 일에 힘쓰도록 마음먹어 달라"고 촉구했다. 총독부가 거듭 강조하는 '황국신민'은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신하와 백성이라는 뜻이다.

완곡하고도 단호한 어조 뒤엔 일본의 절박한 심정이 감춰져 있다. 김 교수는 "석탄 없인 하루도 전쟁을 치를 수 없는 일본은 조선인 징용자들이 잇따라 이탈하자 전쟁 준비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을 걱정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총독부의 글은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자신들의 근대사에서 최대 상징으로 꼽히는 천황과 '야마토 다마시(大和魂·대화의 정신)'를 앞세워 조선인들을 각성시키려 한 것으로, 사실상 경고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하 총독부 문서 전문

산업젼사졔군(産業戰士諸君)

(산업전사 제군)

멀-이 고향을 떠나 산업전사로서 변함없이 북해도에서 일하고 잇는 졔군을 마음것 감사하는 동시에 가족과 함게 우리들의 자랑꺼리로 하고 잇슴니다.

(멀리 고향을 떠나 산업전사로서 변함없이 북해도(홋카이도)에서 일하고 있는 제군을 마음껏 감사하는 동시에 가족과 함께 우리들의 자랑꺼리로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턱별지원병은 자긔 가족 일이나 자귀의 리익도 불고하고 나라을 강하기 위하야 모던 난고을 무럽시고 군무에 보역하고 잇슴니다.

(조선의 특별지원병은 자기 가족 일아니 자기 이익도 불구하고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군무에 복역하고 있습니다.)

졔군도 지원병과 다름업시 조선서 선발된 산업전사가 되어 일하고 잇다는 것을 이저서는 안됨니다. 젼쟹에 이기자면 나라의 힘을 강하게 하지 아니하면 안됨니다.

(제군도 지원병과 다름없이 조선서 선발된 산업전사가 되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전쟁에 기자면 나라의 힘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라의 힘을 강하게 하쟈면 국민 젼부가 각쟈의 일에 일심노력으로 일하는 것이 대졀(大切)함니다마는 석탄과 광석을 파는 일은 턱히 대졀함니다.

(나라의 힘을 강하게 하자면 국민 젼부가 각쟈의 일에 일심노록으로 일하는 것이 대절(아주 절실)합니다마는 석탄과 광석을 파는 일은 특히 대절합니다.)

졔군은 병대(兵隊)와 갓치 젼쟁을 하고 잇는 마음으로 한침 더 참되게 일하는 것을 빌고 잇슴니다.

(제군은 병대(군대)와 같이 전쟁을 하고 있는 마음으로 한층 더 참되게 일하는 것을 빌고 있습니다.)

거런대 졔군 중에는 무단으로 리직(離職)을 하는 사람이 잇고 또는 쟁이(爭義)을 이러킨다는 일을 북해도에서 통지을 밧고 잇는 일도 잇슴니다.

(그런데 제군 중에는 무단으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이 있고 또 쟁의를 일으킨다는 일을 북해도(홋카이도)에서 통지를 받고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럼으로 재군의 가족과 함게 대단 걱정하고 잇슴니다. 모쪼록 금후는 거런 부덕(不德)한 사람이 없도록 하여쥬시요.

(그러므로 제군의 가족과 함께 대단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이제부터는 그런 부덕한 사람이 없도록 하여 주시오.)

생각하면 새월의 지내는 것은 빨나서 소화십사연에 거곳에 가신 분은 게약긔환이 끗날 때까 되엿슴니다마는 이 젼쟁이 게속되는 한 석탄과 광석이 만히 필요 하니까 기여히 기선(歸鮮)치 안코는 안될 턱별한 사졍이 없는 한에는 쟤게약을 이여서 일할 결심을 하여쥬시기를 생갑함니다.

(생각하면 세월이 지나는 것은 빨라서 소화14년(1939년)에 그곳에 가신 분은 계약 기한이 끝날 때가 되었습니다마는 이 전쟁이 계속되는 한 석탄과 광석이 많이 필요하니까 기어히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안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에는 재계약을 맺어서 일할 결심을 하여 주시기를 생각합니다.)

거 게약은 삼년이나 오연이나 긴 것이 조섬니다. 속히 가족을 불너서 지금 일을 게속하는 것이 훌능한 황국신민이올시다.

(그 계약은 3년이나 5년이나 긴 것이 좋습니다. 속히 가족을 불러서 지금 일을 계속하는 것이 훌륭한 황국신민이올시다.)

제군은 요(僚)나 직장의 사람과 이조케하고 경찰서나 협화회, 회사 사람의 지도을 잘 덧도록하고, 또 새로 그곳에 가신 분은 선배의 가러침에 잘쪼차 여러(皆)분과 갓치 훌능한 황국신민이 되여 길접게(樂) 일에 힘시도록 마음먹어 쥬시요.

(제군은 직장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고 경찰서나 협회, 회사 사람의 지도를 잘 듣도록 하고, 또 새로 그곳에 가신 분은 선배의 가르침을 잘 좇아 모든 분과 같이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어 즐겁게 일에 힘쓰도록 마음먹어 주시오.)

일로부터는 졈 츄아지니 신채을 주의하여 상쳐와 병에 덜이지만코 일하시기을 빌고 이게슴니다.

(이제부터 좀 추워지니 신체를 주의하여 상처와 병에 걸리지 말고 일하시길 빌고 있겠습니다.)

소화십육연십월일일 조선총독부

(소화16년(1941년) 10월1일 조선총독부)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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