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거점병원들 “분리 공간서 진찰하라고? 원내 감염 걱정해야 할 판”

신종플루 거점병원들 “분리 공간서 진찰하라고? 원내 감염 걱정해야 할 판”

기사승인 2009-08-24 17:59:03

[쿠키 경제] ‘신종 인플루엔자 관련 환자는 병원에 오기 전에 시간 약속을 잡게 하라. 체온은 입구에서 재라. 접수 창구에선 환자에게 마스크를 줘라. 진료는 분리된 공간에서 하라.’

보건당국이 신종 플루 치료 거점 병원에 내려보낸 이런 지침들은 일선 병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주문으로 드러났다. 상당수 거점 병원이 격리 병실은커녕 별도의 접수 창구나 분리된 진료실을 갖추지 못해 오히려 원내 감염을 염려해야 할 판이었다. 검사 장비와 치료제는 모자랐다. 명확한 환자 관리·운영 지침도 없었다.

24일 서울 지역 거점 병원 54곳 중 10곳을 무작위로 뽑아 확인한 결과 당장 환자를 받아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을 완비한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들 병원을 거점 병원으로 지정해 환자를 집중시킨 정부는 정작 현실과 동떨어진 지침만 던져 준 채 구체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신종 플루를 의심하는 환자가 몰려드는 거점 병원에서는 다른 환자들의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들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은 탓이다.

A병원 관계자는 “사전에 진료 약속을 잡으라는데 전화로 문의하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건소에서도 환자를 민간 병원으로 그냥 보내는 상황이라 환자가 언제 쏟아져 들어올지 모른다”고 했다.

B병원 관계자는 “적지 않은 병원이 신종 플루 환자만을 위한 진료 창구나 진료실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장소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전담 인력을 둬야 하기 때문에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전했다.

신종 플루 환자를 발견하더라도 이들을 격리해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병원은 거의 없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C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엔 음압시설을 갖춘 병실이 없다. 이럴 경우 환기 장치가 돼 있는 병실에 입원시키라는 정부 지침에 따르더라도 진료 지원 인력 관리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환자에게 식사를 나르고 병실을 쓸고 닦는 사람들이 감염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D병원 관계자는 “의심 환자들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물론 다른 환자들의 안전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직원 중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그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이들 거점병원에서조차 부족했다. 5명이나 10명 분량 만 갖추고 있거나 심지어 아예 없는 병원도 있었다.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장비나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지급해야 할 마스크도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강남의 한 병원 관계자는 “보건당국이 거점 병원으로 결정할 때 그쪽으로 몰리는 현상을 충분히 생각해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거점병원이 되었지만 정부 측에서 통보만 내린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양진영 기자,사진=김지훈 기자
kcw@kmib.co.kr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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