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무서운 어머니 ‘가모장’ 시대

강하고 무서운 어머니 ‘가모장’ 시대

기사승인 2009-09-03 00:02:00


[쿠키 사회]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하려고 합니다. 친구 공부 진학 취업 연애 결혼. 나이 서른이 넘도록 뜻대로 해 본 게 없는데 이게 정상입니까? 어머니의 욕심이랑 고집은 아버지도 못 말립니다. 어머니가 숨통을 쥐고 놓아주지 않으니 도대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최근 서울의 한 상담소를 찾은 한상호(가명·31)씨는 어머니 때문에 괴로운 심경을 토해냈다. 이어 "못 살겠다. 도와 달라. 빠져나갈 방법을 알려 달라"는 말을 수차례 거듭했다. 절망감과 절박함이 뒤섞여 있었다.

집안에서 전권을 휘두르며 자녀를 쥐락펴락하는 어머니 '가모장(家母長)'은 더 이상 드라마 속에만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가장의 자리를 차지한 어머니들은 현실에서도 자기 뜻을 앞세워 자녀를 좌지우지한다. 어머니의 지나친 감시와 간섭을 견디다 못해 정신적·심리적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성인 자녀는 늘고 있다.

어머니와 자녀 사이 갈등은 가장 잦은 가정 상담 유형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상담원을 찾아와 가족 문제로 상담한 1413명 중 87.1%인 1230명이 부모·자녀 간 갈등으로 괴로워했다. 이경숙 상담원은 "그 중 대부분이 어머니와 자녀 사이에 벌어지는 문제였다. 자녀가 성장할수록 충돌은 심해졌다"고 전했다.

눈과 귀를 닫은 채 자신의 말에 복종토록 강요하는 모성은 자녀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가정을 어그러뜨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자녀의 장단점과 호불호는 안중에 두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만 자녀를 몰아가는 어머니의 카리스마는 자녀의 인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아이는 엄마의 작품이다. '동쪽으로 가라, 서쪽으로 가라'는 식으로 키우면 자녀는 평생 자립 능력을 못 기른다. 그러다 취업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가출 자해 자살을 시도하거나 극심한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빠지는 자녀도 적지 않다.

1960∼70년대 아버지가 누리던 가장의 권위는 빠르게 어머니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남편이 돈을 벌러 나가고 없는 집안에서 온갖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려대 황명진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어머니 역할에 무게가 실리는 쪽으로 가족 구조가 변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그런 변화를 너무 갑작스럽게 맞았다"고 진단했다.

가족 구성원 간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서울대 김명언 심리학과 교수는 "어머니의 지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아버지들은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다. 아버지가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면 가족 간 불균형이 생기고, 어머니와 자녀는 불협화음을 낸다"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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