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숨막힙니다”…자녀 취업·결혼 간섭에 갈등 심화

“어머니 숨막힙니다”…자녀 취업·결혼 간섭에 갈등 심화

기사승인 2009-09-03 00:09:00


[쿠키 사회] 부모와 함께 사는 회사원 권기영(가명·29)씨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자신의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사사건건 자신을 무시하며 못마땅해 하는 어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는 고육책이다.

왜 그렇게 빠릿빠릿하지 못하게 사느냐. 그놈의 회사에서 몇 푼이나 벌어 온다고 늦게까지 돌아다니느냐. 옷은 또 왜 그렇게 입고 다니느냐." 어머니는 아들을 볼 때마다 격한 어조로 매몰찬 말들을 퍼붓는다. 권씨는 때때로 항변하고 설득해 봤지만 갈등만 깊어질 뿐 대화가 접점에 이른 적은 없었다. 그러길 10여년이다.

6년 가까이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하려던 진건호(가명·29)씨는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를 이길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집안끼리 종교가 다른 점부터 직업과 외모까지 흠잡았다. 진씨가 버티자 어머니는 상대 부모를 찾아가 온 가족이 개종하지 않으면 결혼시킬 수 없다고 못박았다. 받아들여지기 힘든 요구였다.

진씨의 여동생(28)도 어머니의 완고함을 배겨내지 못하고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어머니는 상대 집안의 가난을 들추어 내며 두 사람을 갈라 놓았다.

까다롭고 욕심 많은 어머니 '가모장'

어머니가 가족 위에 군림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적지 않은 자녀가 자신을 조종하려 드는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들은 대응할 힘이 생기면 억눌렀던 감정을 터뜨리며 어머니와 충돌하기 시작한다. 가정이 흔들리는 원인 중 하나다.

사회학자들은 가모장의 등장을 집안과 집밖의 경계가 뚜렷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본다. 일터로 나간 아버지들이 집안일에서 손을 떼면서 어머니 역할과 가족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집에서 아버지 노릇까지 해야 하는 어머니들은 주로 자신이 경험한 권위적 아버지의 모습을 좇았다.

가부장은 엄하고 매서웠지만 모성 본능을 지우지 못한 가모장은 까다롭고 욕심이 많다는 점에서 다르다. 가모장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하므로 자녀로선 더욱 힘겹다. 가모장 노릇을 하는 어머니 중엔 대학을 졸업한 중산층 주부들이 많다.

이들 어머니는 자녀 양육에서부터 친인척 관리와 자산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사를 책임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기운을 자녀에게 쏟아붓는다. 중앙대 신광영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과정에서 자녀의 삶을 자기 삶과 동일시하게 되는 어머니들은 자녀가 취업하고 결혼한 뒤로도 손을 놓기 어렵다"고 했다.

가족 구성원 간 역할을 재설정할 때

가모장 출현은 남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역전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한때 돈만 벌어다 주면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여겼던 아버지들은 출렁이는 경기 변동에 휩쓸리며 일자리를 위협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가족 부양'이라는 유일한 자존심마저 지키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선진국 대부분은 이미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갔다고 황명진 고려대 교수는 말했다. 가족 구조 변화와 아버지의 역할 부재는 후기 산업사회에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특히 미국에선 1960∼70년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존재감을 잃었다가 80∼90년대 들어서야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물론 그 사이 아버지의 역할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가족 구조를 거부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가족 구성원 모두 변화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역할을 설정해야 혼란을 해소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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