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감독’ 류현경 “10년 연기생활, 감독 역할로 쉼표”

[쿠키人터뷰] ‘감독’ 류현경 “10년 연기생활, 감독 역할로 쉼표”

기사승인 2009-09-14 12:06:00

"[쿠키 연예] 연기력도 외모도 꽤 괜찮은 배우인데, 스크린이나 안방극장 등에서 꾸준히 보이지 않아 ‘언제 나오나’ 기다림을 주는 배우들이 있다. 배우 류현경도 그 중 하나다. 요즘 뭐하나 싶어 포탈에서 검색어 삼아 이름을 두드려보니 바로 지난 토요일에 자신의 팬들과 함께 사랑의 쌀 400kg을 기부하고 봉사활동을 했다. 온라인 뉴스 상으로 그녀의 최근 행적을 더듬어본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배우 최강희가 주연한 영화 <애자> VIP시사회에 참석해서 눈물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슬프지만 재미있고 감동과 여운을 줄 수 있는 영화”라는 시사 후기를 남겼다.

배우 류현경, 이번엔 감독이다

그리고 8월말, 제3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신설한 영화제 속 영화제인 대학생단편영화제 <씨네 스튜던트>에 <광태의 기초>를 출품,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관객 앞에 나섰다.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들과 출연과 연출의 구분 없이 배우도 하고 스태프도 하고 감독도 하며 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단독으로 영화제작의 전체 과정을 이끈 첫 영화다 보니 감독 데뷔작이라는 설명이 따라다닌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류현경이 만든 영화가 <씨네 스튜던트>에 출품된 158편 가운데 30편을 고르는 본선에 올려진 것을 두고 ‘배우니까 뭘 만들었어도 본선에야 올랐겠지’하고 말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30편 가운데 다시 5편을 택한 수상작 명단에는 들지 못했으니, 홍보용 선택이었다고 가벼이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못 봤으면 말을 하덜 말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직접 관람하지 않았으면 쉽게 입을 뗄 일이 아니다.

8월30일, 서울 동대문메가박스에서 <광태의 기초>를 비롯해 5편의 대학생 단편 묶음을 관람했다. <씨네 스튜던트> 최종 수상작 5편 가운데 두 편이 포함돼 있는 묶음이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5편 가운데 두 번째로 마음에 든 영화가 <광태의 기초>였다. 한 작품씩 상영이 끝날 때마다 미래의 영화인에게 보내는 격려의 박수가 보내졌는데, <광태의 기초>를 향한 박수도 꽤나 컸다. 다섯 편 가운데 가장 크게 웃으며 본 영화에 대한 긍정의 박수였다.

‘무표정’ 광태가 주인공…너를 보여줘

영화는 잘 웃지 못하는, 아니 희로애락의 솔직한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남자 광태의 이야기다.

류현경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병’으로 규정하고, 타인과 관계 맺고 살아가기엔 치명적으로 위험한 병에 걸린 광태의 삶을 조용하게 드러낸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감정을 소통하지 못하니 애인에게 이별 선언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적절한 처세술과 포커페이스가 필요한 직장에 다닐 수 없는 것은 물론이며 거대한 사람 사이(인간)의 네트워크 ‘사회’에 발을 내디딜 수 없음은 필연이다.

마치 은둔형 외톨이처럼, 자신의 방안 TV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는 광태.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그의 발걸음을 대문 밖 세상으로 이끄는 화면이 있었으니 연기학원 ‘액팅 스페이스’의 광고다. 그리고 그는 넉넉한 웃음과 초탈의 경지에 오른 듯한 남자(박철민 분)가 원장으로 있는 그 연기학원에서, 마치 정신병원의 모노드라마와도 같은 치유의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

영화 <광태의 기초>는 1차적으로 연인이나 지인들에게 애정이든 서운함이든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 관계를 병들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 충고이자, 결국은 표현의 부족이 자신의 삶과 정신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나치게 이성적이거나 성품이 냉랭하고 건조한 사람들, 우유부단하거나 마음이 여려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와 연인 곁으로, 동료들 사이로 나오라고 손짓한다.



<광태의 기초>…류현경이 보인다!

배우가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고 본다면, 배우 류현경이 연기에 대해 지니는 생각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류현경에게 있어 곧 삶이기도 한 연기는 ‘류현경은 OO다’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이며, 자유로이 표현하지 못할 때 그것은 ‘병마’처럼 그의 인간관계와 세상살이를 파고들어와 폐허로 만든다. 광태의 삶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에게 있어 연기는 치유의 기적이다. 액팅 스페이스를 거친 광태의 내일이 그것을 짐작케 한다.

데뷔 10년차에도 목마르지 않고 샘처럼 솟아나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고, 흔히 말해 톱스타 대열에 오르지 못한 배우임에도 자신을 드러내며 연기하는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전해온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레드카펫의 화려한 여신이 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길을 알지만 가지 않으며 묵묵히 진정한 배우의 길, 연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류현경이 오롯이 드러난다.

배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답게,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은 성찰을 피력해낸 연출작으로 10년 연기생활을 차분히 정리해낸 류현경. 그는 그렇게 한 번의 ‘쉼표’를 찍고, 다음 번 쉼표를 향해 ‘마침표’ 모르는 연기 인생을 내딛었다.

류현경 “감독 해보니 작품이 원하는 배우 알 것 같아”

류현경을 만났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관객과의 대화에 나섰던 일을 떠올리며 “떨려 죽는 줄 알았어요. <광태의 기초>에 대해서만큼은 마치 신처럼, 관객의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귀엽다.

“제 안에는 생각이 있고 그것을 영화로는 표현했는데, 말로는 잘 못하겠더라고요. 아직은 ‘표현하기’를 더 배워야하는 배우구나 싶었어요. 자꾸 배워서 배운가?(웃음) 자극이 되는 신선한 경험이었네요.”

감독으로서의 재주도 엿보인다는 칭찬을 건넸더니 얼굴이 새빨개진다. “아니에요, 영화 전체를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라고요. 덕분에 앞으로 연기할 때는 배우의 눈뿐 아니라 감독의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보게 될 것 같고요, 좀 더 작품 전체가 원하는 연기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 게 성과라면 성과예요.”

류현경은 겸손했지만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한 장면인 인형극, 팔다리에 달린 줄로 조정되는 나무 인형의 슬픈 표정이 인상적이었던 바로 그 장면을 영화의 시작으로 사용한 점이나 광태의 시선을 돌려세우기 위해 직접 만든 ‘액팅 스페이스’ 광고영상, 흑백 같은 비오는 거리를 지나 연기학원으로 가는 광태의 빨간 우산, 신발 벗을 정신도 없이 연기학원 무대에 들어선 광태의 발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광태’ 장효진, 류현경 손 거쳐 ‘반짝반짝’

다시 연출을 한다면, 아주 독한 감독이 되겠구나 싶기도 하다. <광태의 기초>에서 광태로 나오는 장효진은 이 영화가 건져낸 큰 수확이기도 하고 관람의 재미이기도 한데, 말에는 온갖 굴곡진 감정을 드러내되 얼굴은 모든 인간과 사물에 대하여 본숭만숭 하는 표정이어야 하니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다. 류현경은 배우라는 자신의 직업을 잊지 못하고, 장효진을 몰아쳐댔다. 이상적으로는 배우의 고충을 알기에 감싸는 일도 가능하겠지만, 시집살이 당한 며느리가 독한 시어머니 되는 게 현실이다.

“오빠, 그게 아니지. 나하는 거 잘 봐.”
“이거잖아, 이게 안 되는 거야?”

류현경은 2006년 말에서 이듬해 봄까지 방영된 드라마 <일단 뛰어>에서 배우 장효진을 만났다. 당시 장효진의 극중 이름도 광태, 박광태였다. 류현경은 <광태의 기초> 시나리오 작업부터 장효진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배우로서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겠지만, ‘일본의 꽃미남 배우를 캐스팅 했나’ 싶을 만큼 외모가 좋고 어딘가 애조를 띤 눈빛이 강렬해 영화의 만족도를 한층 높인다.

“오빠가 워낙 성실하고 연기에 열심인 사람인 줄 알기에 출연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해 줬어요. 출연료도 없는데 말이죠, 그건 박철민 선배님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애써 모셔놓고는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효진 오빠를 닦달했어요, 사실 배우의 해석이 보태진 게 연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예요. 그런데 오빠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를 감독으로서 예우해주더라고요. 만만찮은 요구인데도 끝내 제가 흡족하게 OK사인을 낼 만큼 좋은 연기를 끌어내주셨고요. 작은 영화지만 이번 연기를 통해 배우로서 다시 한 번 부각되는 계기가 된다면 제 미안함이 덜해질 것 같아요.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싶은, 좋은 배우세요.”

류현경은 연신 ‘미안하다’를 외쳤지만 스크린 위에 장효진의 매력을 한껏 발산시켰으니, 되레 감사를 받아야할 일이다. 자신이 배우여서일까, 좋은 탤런트를 잠재한 배우를 찾아내 돋보이게 살려내는 게 감독의 임무 중 하나라면 류현경은 확실하게 해냈다.

류현경 “저, 오래하고 싶어요”

독한 감독에게 독한 소리를 돌려줬다. ‘지금 태평하게 남 잘되기를 바랄 때냐, 올해 <물 좀 주소> 있기는 했지만, 지난해 <신기전> 이후 별다른 행보가 없다. 100개의 로켓불화살을 쏘아 올리는 방옥이를 한 뒤 그 여세를 몰아 좋은 기운을 이어갔어야 했다’. 류현경의 답에는 여유와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저 연기 오래하려고요^^. 배우로서 관객 여러분 곁에 오래 있고 싶어요. 아직 배워가야 하는 단계인가 봐요. 더 열심히 배워서 더 좋은 배우 되면 저를 불러주시는 분들 많겠죠. 말씀드렸지만 연기랑 삶은 제게 하나예요. 지금 살고 있는데 연기 안 하게 되겠어요? 천천히 가려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여유로움과 행복일까. 지긋이 눈가에 입가에 머금어내는 미소에 진심이 담긴다. 그래도, 조금은 더 자주 배우 류현경의 매력을 영상매체 안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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