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임재범 “말술? 원래 못 마셔요”…이중성? 감수성 그리고 의외성

[쿠키人터뷰] 임재범 “말술? 원래 못 마셔요”…이중성? 감수성 그리고 의외성

기사승인 2010-04-13 16:26:00

"맛이 깊고 향이 좋은 줄은 알지만 너무 진해서 가까이 하기 쉽지 않은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 우유거품을 얹어
카페 마끼아또, 생크림을 얹어 카페 콘파냐로 만들면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부드러운 콘서트 ‘산책’…에스프레소에 크림, 우유?

한국 가요계에서 에스프레소를 떠올리게 하는 가수 중에 임재범 만한 이가 또 있을까. 누구보다 깊은 음색, 짙은 감성을 뿜어내는 뮤지션 임재범이 관객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스스로 ‘우유’와 ‘크림’을 준비했다. 2006년 데뷔 20주년 공연이 마지막이었던 팬들과의 호흡 무대를 4년 만에 마련하는가 하면, 6년 만에 방송 출연도 하고, 공개석상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그가 인터뷰에 응하고 나섰다.

서울 학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하니 더 많은, 아니 보다 본질적이면서도 중요한 우유와 크림이 준비돼 있음을 알겠다. 오랜만의 콘서트에 ‘산책’이라는 이름이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제 노래들을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해온 기존 무대들과 한참 다른 콘서트가 될 겁니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 ‘고해’를 비롯해 큰 사랑을 주신 노래들이 불려지는 건 같지만, ‘산책’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모든 곡들을 새롭게 편곡했거든요. 편안해진 노래와 부드러워진 음색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한결 녹녹해진 ‘이 밤이 지나면’과 ‘사랑보다 깊은 상처’, ‘고해’와 ‘너를 위해’는 어떤 느낌일까. 스스로 “콘서트를 찾아주신 여러분에게도, 제게도 즐거운 산책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여 편곡부터 연습까지 꼼꼼히 준비하고 있다”는 모습에서 과거 그의 뒤를 따라다니던 ‘방랑’ ‘기인’의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푸근하고 성실한 이웃집 아저씨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다.

“잘난 척 증발? 무대 긴장감에 도망”

장난기가 발동한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선 공연 직전에 훌쩍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건 아니겠죠?

“예전에 잘나갈 때 그런 적이 있었죠(웃음). 그런데 그게 결코 인기에 자만해서, 제가 잘났다고 생각해서 함부로 행동했던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 두려웠습니다. 무대에 서는 게 너무 떨리고 여러분 앞에서 노래하는 게 겁이 나서 도망갔던 거예요. 못나서, 부족해서 했던 실수들입니다.”

임재범은 뮤지션으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무대 오르기 전에 무척 긴장해요. 신경이 끊어질 것 같은 긴장이죠. 어떻게 어떻게 해서 무대에 올라도 처음엔 관객을 바라보지 못하고 45도에서 60도 전방을 보며 노래해요. 그런데 그 떨려 죽을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관객 분들이 제게 주시는 에네르기(에너지)가 느껴져요. 그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 저는 돌변합니다. 이제는 무대에서 억지로 끌어내려야 할 정도로 계속 부르고 싶어 해요. 우스운 건 그렇게 저를 쏟아내고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집에서 조용히 틀어박혀 지내고 싶어 하고요. 다시는 무대에 오르지 않고,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상황에서 살고 싶은 겁니다.”

본인은 어처구니없는 이중성이라고 표현하지만 듣는 이에겐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으로 다가온다. 정작 본인은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끼에 이리저리 치이며 고단한 삶을 살 테지만, 그런 고통의 과정 속에서 녹슬지 않고 유지되는 예민하고도 순수한 ‘예술적 재능’은 그것을 향유하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이중성? 감수성 그리고 의외성

예민한 촉수를 통해 흡입되고 뿜어지는 예술적 감수성 외에 임재범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의외성’이다. 본인 말대로 ‘말술을 마시게 생긴 외모’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술과 친하지 않다.

“원래 술을 못 마셔요. 담배도 6개월 전에 끊었습니다. 다행히 힘들지 않게,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뚝 끊게 됐어요. 비록 작은 달란트(재능)나마 제가 가졌다고 제 것인 게 아님을, 주신 분이 있음을 알게 된 순간 손이 안 가더라고요.”

희뿌연 담배연기 너머, 얼큰하게 취기 오른 모습이 너무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은 ‘짧은’ 편견에 불과했고, 부끄러운 선입견이었다.

“속을 긁어 올리는 소리라고 하죠, 허스키한 제 목소리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하실 거예요. 실제로 예전 뮤지션들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할 짓 못할 짓 다했거든요. (조)용필이 형님은 ‘인분’을 드셨다는 소문도 돌았을 정도니까요. 소리 만들겠다고 술이나 담배를 부러 들이붓는 일이야 흔했죠(웃음).”

“아이돌 좋아해…자기 소리 찾기를”

임재범은 ‘소리 찾기’라는 측면에서 흔히 말해 ‘요즘 친구들’에 대해 걱정했다. “딸아이가 좋아해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함께 듣다보니 아이돌 친구들 노래, 좋은 거 많더라고요. 다만 유명 작곡가들이 공장에서 공산품 찍어내듯 만드는 노래를 ‘불러주는 데 그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게 되면 누가 불러도 상관없는 거고 어느 작곡가의 노래냐는 것만 중요해지잖아요. 노래라는 게 곡과 가사와 소리가 하나로 만나 완성되는 건데, 누가 불렀느냐에 따라 같은 노래도 다른 감성으로 해석되고 표현되는 건데 그러면 안 되죠. 그런 의미에서 요즘 후배님들도 자신만의 소리 찾기에 노력해 줬으면 해요. 그래야 몇 년, 몇 십 년이 흐른 뒤에도 찾게 되는 음악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쿠, ‘너나 잘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해도 해도 가수라는 직업에 익숙해지지 않고 늘 초보인 사람이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하는데….”

‘초보’. 언제나 신선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며 살아야하는 게 예술인의 숙명이라면 스스로를 음악 마니아 수준을 갓 넘어선 초보 음악인으로 평하는 임재범은 제격 아닐까. 연예계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 음악인 임재범은 그런 자신을 불안해했다.

“가끔씩 이지만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한다는 건 프로라는 얘긴데요. 그런 놈이 앨범 출시 기념 줄줄이 방송출연이나 인터뷰를 두려워해요. 보시는 분 입장에서는 앨범을 냈을 때 가수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저도 할 거라고 기대하실 거고 그게 소위 ‘시스템’이라는 것, 잘 압니다. 그런데 그 시스템에 도통 친해질 수가 없네요. 이번엔 제가 준비한 산책로에 많은 분들이 놀러 오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 이것저것 해보고 있는데요, 한번 했으니 앞으로도 계속 하겠습니다…하고 저를 장담할 수 없어 죄송할 뿐입니다.”

달변 임재범, 예능 늦둥이로?

얘기는 계속됐다. 들을수록 달변이다. “장담이라는 게 그래요. 인생에 어디 장담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지금으로서는, 저는 한 번에 하나밖에 못하는 사람이라 노래에 연기까지 해야 하는 뮤지컬은 못 합니다, 음악프로그램 출연까지는 모르겠는데 예능은 안 합니다, 하고 말씀드리지만 또 모르죠.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가서, 아 제가 누군지 모르실 때까지요, 동네 분들과 얘기 풀어놓는 수준이면 ‘예능 늦둥이’도 가능할 것 같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이불 속 활개인 거고요. 아이고, 제 말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죠. 제가 이래요, 수다가 시작되면 수많은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며 한없이 달려간다니까요, 하하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그에게 어떤 음악인으로 남고 싶은지, 짓궂지만 물었다.

“제가 오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지금부터 무엇을 해서 음악사에 한 획을 긋겠다 할 생각도 없고요, 그렇다고 다 살았으니 할 게 없다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보다 한 뼘이라도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게 소망이라면 소망입니다. 그런 오늘이 어떤 내일을 가져다주겠죠?”

“신중현 존경…후배들과 가까이 지내고파”

개인적으로는 소박한 꿈을 주저 없이 내비친 그가, 후배를 포함해 한국 음악계의 미래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였다. “신중현 선배님을 정말로 정말로 존경해요. 한국 록의 ‘말 그대로’ 대부시죠. 저는 그렇게 한 우물을 파지 못했어요. 록은 제 마음의 고향이자 첫사랑으로 남겨 두고, 나이 들어가는 팬들과 함께 재즈나 소울, 발라드를 하며 함께 늙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잘난 척 하며 후배님들을 이끌 생각은 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살아온 게 있고 겪어온 게 있으니까 제게 편히 물어 오신다면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은 있을 거예요. 먼저 다가가는 게 맞겠지만 제가 부끄러움이 많거든요(웃음). 겉보기와 달리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니까 편하게 ‘형, 형’하며 다가와주면 좋겠네요.”

얘기를 나눌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홉 살 딸을 둔 아빠라지만, 마음과 감수성은 어쩌면 그보다 여리고 순수할지 모르겠다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임재범의 순수함은, 카페 마끼아또를 넘어 라떼 마끼아또로 부드럽게 변신한 에스프레소는 오는 5월 1일과 2일 서울 성산로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음미할 수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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