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데뷔 15년’ 이성재, “한류스타 자리 슬슬 욕심나요”

[쿠키人터뷰] ‘데뷔 15년’ 이성재, “한류스타 자리 슬슬 욕심나요”

기사승인 2010-06-03 10:32:01

"[쿠키 연예] 이성재의 또 다른 이름은 ‘배우’다. 연기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배우’라 부른다.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는 사랑에 서툰 ‘철수’로,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는 불운의 야구 천재 ‘노마크’로 <신라의 달밤>에서는 소심한 모범생에서 엘리트 깡패가 된 ‘박영준’으로 <공공의 적>에서는 섬뜩한 살인마 ‘조규환’으로, 캐릭터에서 캐릭터로 옮아가며 ‘이성재’라는 이름을 지워온 천상 배우다.

강산도 한 번 변한다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벌써 15년 째. 그동안 출연한 작품만 줄잡아 영화 15편, 드라마 5편. 편수로만 놓고 볼 때 1년에 한 번 꼴로 작품에 출연하는 소위 ‘소작(小作)하는 배우’이지만, 그만큼 숨고르기를 하며 한 작품 한 작품 힘을 쏟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흔한 꾀 하나 부리지 않고 매 작품마다 캐릭터를 체화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일까. 지난 15년 동안 이성재가 연기한 캐릭터는 겹치는 구석이 거의 없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다르고 때로는 일부러 찾아냈다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스스로 ‘다채로운 배우’가 되기를 소망했고, 어느 정도 그 뜻에 다가갔다.



어떤 인물에도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단련시켜온 이성재. 그가 이번엔 저 멀리 이북 땅으로 눈을 돌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비무장지대(DMZ) 북한 휴전선 감지 초소(43GP)에서 축구 붐이 불었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연출 계윤식)에서 1분대장 역으로 소소한 웃음과 재미를 낚아 올렸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 역할에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니다. 대박 난 작품을 잡은 배우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그러하듯 그도 네 차례나 출연을 고사했다. 시도하려던 작품이 무산돼 본의 아니게 3년 동안 공백기를 갖게 되면서 매사에 신중해진 것도 한몫했다. 오랜 고민과 망설임 끝에 ‘스크린 열차’에 탑승했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동방의 빛’(가제) 출연 제의를 먼저 받은 터라 다른 작품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그만큼 캐릭터와 작품에 흠뻑 빠져있었죠. 그런데 촬영 시기가 점점 늦춰지면서 자연스럽게 <꿈은 이루어진다>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여러 번 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배역이 나에게 돌아오는 걸 보고 ‘아 내가 해야 할 운명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촬영에 들어가 보니 ‘이 좋은 작품을 두고 왜 고민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일단 100만 명만 넘으면 좋겠는데 잘 될까요?(웃음)”

영화배우에게 ‘관객 성적표’는 무시할 수 없는 지표다. 관객의 수가 배우의 연기나 작품의 완성도를 모두 대변할 수 없지만, 배우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돈과 명예를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귀하신 몸’에는 틀림없다. 이성재는 2002년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으로 서울 관객만 116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역대 순위 참조)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흥행에 성공했으나 이후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지난 8년 동안의 부진으로 인해 ‘이성재는 연기력에 비해 작품 운이 안 따라주는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한때 이런 시선이 상처가 됐으나, 지금은 많이 여유로움을 찾았다.

“예전에는 개봉일을 앞두고 정말 초조하고 민감했죠.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박혔을 정도로요. 특히 <신석기 블루스> 개봉 때 예매율이 1%인 걸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어요. 1%면 웬만한 규모의 한국영화에서는 일부러 나오기도 힘든 수치거든요. 하지만 당시 자책하기보다 ‘이 순간을 웃으면서 즐기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성공하는 작품이 있으면 허허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때를 만들자’며 스스로 위로했죠. 제가 몇 년 정도 배우 생활하고 말 것도 아니고 꾸준히 오래할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으려고요.”

지금이 바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그때일까. <꿈은 이루어진다>는 감동과 재미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물론 예고편만 접한 본 일부 사람들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아니냐’며 식상한 레퍼토리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다. 또 남한군과 북한군의 우정을 다뤘다는 점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떠올리고, 전투애를 담았다는 점에서 <실미도>를 연상하는 관객도 더러 있었지만, 실상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편견들이 역발상의 재미로 다가온다.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는 중간 중간 ‘웃음 지뢰’를 심어놓은 것처럼 입가에서 미소를 짓게 만들고 강성진(김응태 중병 역), 정경호(주근치 상병) 오태경(안계수 무전병), 이정호(모름직 초병), 최상학(박시학 전사) 등 연기파 배우들의 호연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꿈은 이루어진다>가 발견한 걸출한 신인 진다미의 코믹 연기는 극의 흐름을 유연하게 만든다.



이성재가 <꿈은 이루어진다>를 촬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일은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 두 딸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이란다. 물론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 모두 아내와 자식들에게 보여주기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극적 코드를 뺀 영화이기에 더욱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었다고. 이성재는 지난달 17일 개봉을 앞두고 열린 VIP 시사회에서 처음으로 초대한 두 딸에게 미소를 건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두 딸과 함께 TV를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거든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 영화를 보면 아이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난생 처음 시사회에 초대했어요. 영화가 다 끝나고 아이들에게 ‘영화 어땠니’라고 물어봤더니 ‘재밌었다’며 씩 웃더라고요. 아빠가 물어보니 그렇게 대답했겠지만요(웃음). 전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요. ‘너희들이 재미없어하는 영화는 안 해’라고요. 제 아이들도 조금이나마 즐거운 시간을 가졌듯 관객도 기분 좋게 관람하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로 마흔 하나.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이 흐려지는 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요즘 한 가지 유혹 만큼은 유독 벗어나기 어렵단다. 바로 배우로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국내 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배우이자 저 멀리 아시아에서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기에 다소 늦은 나이일 수 있지만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을 믿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한류 한류’ 목소리가 컸지만, 전 요만큼도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2,3년 전부터 슬슬 한류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돈이나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 이성재’의 영향력을 높이고 싶어서요. 저번에 TV에서 이영애 씨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일본이나 중국은 두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에서도 이영애 씨를 알더라고요. 이영애 씨가 하는 말이나 행동 모두 화제가 될 만큼 배우로서의 파워가 대단하더라고요. 이렇게 영향력이 커지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여파가 굉장한 것 같아요. 제 인생 목표는 강력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선한 일을 하는데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아 언제쯤 가능할 런지…. 하하하.”

한류배우로 성장하기 위해 100억 원 규모의 대작 영화 <현의 노래>에 도전한다. 악공 우륵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현의 노래>는 김훈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3D로 제작된다. 특히 이번 작품은 장지량 감독의 <묵공>으로 이름을 알린 일본의 프로듀서 이세키 사토루가 해외 배급 및 마케팅에 참여해 전 세계 3000개 스크린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어 해외 진출이 용이해졌다. 또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파격적 노출신이 담긴 멜로 영화 <수수께끼>도 촬영 중이다. 헤어스타일을 탈색하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것도 이 작품에서 보여줄 색다른 변신을 위해서다.


“전 제 배우로 사는 게 참 좋아요. 그리고 궁금해요. 앞으로의 제 미래가 어떨지요.” 다양한 캐릭터의 옷을 입고 벗으며 인간 이성재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배우 이성재’. 어제와는 늘 다르게, 지금보다는 더 훌륭하게 변해있을 그가 어떤 연기의 향연으로 대중을 초대할 지 기대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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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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