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윤형빈 ‘왕비호’에서 ‘남자’ 되다

[쿠키人터뷰] 윤형빈 ‘왕비호’에서 ‘남자’ 되다

기사승인 2010-06-15 09:50:00

"[쿠키 연예] KBS 2TV ‘개그콘서트’의 이슈 메이커 ‘왕비호’ 윤형빈(30)이 점잖아졌다. 지난해 3월29일 첫 전파를 탄 주말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이하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초대 손님을 쥐락펴락했던 독설은 첫 회부터 사라졌고, 표독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부쩍 줄어든 말수에 온화한 미소를 짓는 착한 남자가 됐다. 많은 이들은 방송 초반 윤형빈의 이런 모습을 두고 ‘가식적이다’ ‘왕비호처럼 굴어라’ ‘재미없다’는 비난을 보냈지만, 윤형빈은 ‘왕비호’인 척 할 수 없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특성상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 못할 거면서 왜 출연했냐는 시청자의 의견을 들을 때마다 ‘아 그냥 왕비호처럼 해버릴까’ 고민했었어요. ‘왕비호’ 캐릭터로 갔으면 제 존재도 알리고 이경규, 김국진 선배를 호통 치는 모습을 재밌어하는 시청자도 생겼겠죠. 하지만 전 ‘왕비호’ 캐릭터를 ‘남자의 자격’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건 저의 참 모습이 아니니까요. 카메라가 24시간 도는 프로그램의 성격상 하루 종일 머리 굴리면서 저를 ‘왕비호’처럼 만들 자신이 없더라고요. 제가 그만큼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요(웃음). 인기나 인지도를 높이는 걸 포기하고 ‘남자 윤형빈’을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왕비호’ 캐릭터를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하나 둘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면서 캐릭터를 형성해갈 때, 본인만 뚜렷한 캐릭터가 없었고, 뱉는 말마다 밋밋해 편집 당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독설 캐릭터에 눈이 갔지만 언젠가는 ‘인간 윤형빈’을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에 꾸밈없이 카메라 앞에 섰다.

“‘남자의 자격’을 하면서 느낀 리얼 버라이어티의 매력은 진심이 통한다는 거였어요. ‘오늘은 또 어떤 말로 웃길까’ ‘언제쯤 치고 들어가야 하지?’ 고민을 하느라 늘 머리가 아팠는데, 어느 날부터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니 술술 잘 풀리더라고요. 그때부터는 딱 맞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떤 것 하나 감추지 않고 카메라 앞에 정직하게 섰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시청자들도 점점 재밌어진다고 응원을 해주셨고요. 제 진심이 시청자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된 것 같아 기뻤습니다.”



기자가 여러 해 동안 만나본 윤형빈은 한결같은 개그맨이다. ‘왕비호’로 뜬 직후에도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으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다. 어려운 처지에 처할지라도 정을 나눈 식구들을 외면하지 않고 콩 한쪽을 나눠먹는 의리파이기도 하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 이윤석, 김성민, 이정진 여섯 형을 모시는 예의 바른 청년 이미지는 방송용이 아닌 실제로 그러하다. 눈물 젖은 빵을 함께 먹으며 우정을 쌓은 조원석과의 일화에서도 윤형빈의 한결같음이 드러난다.

“제 이미지가 착하게 생기지 않아서 그런지 다들 절 오해해요(웃음). (조)원석이 형은 8년 전부터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우정을 쌓았던 사이인데요. 형이 처음 절 보고 착하게 말하고 행동하길래 ‘가식이겠지’ 생각했나 봐요. 그런데 8년이 지나도 처음 만났을 때랑 비슷했는지 ‘형빈아 내가 처음에는 가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쩜 8년이 지나도 그대로냐. 1~2년도 아니고 8년 동안 가식인 척 살긴 어려우니 그게 어떤 모습일지언정 널 인정한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아 내가 가식적이었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전 한 번도 불편하지 않았거든요. 8년이나 만난 형도 저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데 시청자나 팬들은 오죽하시겠어요. 저에 대한 오해의 시선들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꾸준한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언젠가 제 모습을 알아봐주시겠죠.”

‘착한 남자’ 윤형빈. 그렇기에 왕비호 캐릭터로 초대 손님을 불러놓고 삿대질하거나 비아냥거리기까지 쉽지 않았다. 3년 동안 ‘왕비호’ 캐릭터로 개그하면서 굳어진 이미지 때문에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다’ ‘내숭 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은 고마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무명 개그맨에 불과했던 제가 ‘왕비호’ 덕분에 그나마 이름이 알려졌죠. 길거리를 지나면 절 보고 환하게 웃어주시는 분들도 더러 있고 연예인들도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요. 예능 진출이 소원이었는데 왕비호 덕분에 ‘남자의 자격’에도 출연하게 됐고 케이블 채널 ‘러브 추격자’ 진행자까지 맡게 됐으니 한 풀었죠(웃음). 이젠 ‘남자의 자격’에서 온몸을 던져서 ‘인간 윤형빈’을 알리는데 집중하려고요.”

윤형빈은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선배 개그맨 이수근처럼 성장하길 소원했다. 이수근도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다가 ‘개그콘서트’ 코너 ‘고음불가’ ‘키컸으면’으로 국민적 인기를 얻어 ‘해피선데이-1박2일’에 캐스팅됐다. 초반 방황의 시간이 길었지만 ‘국민 일꾼’ 캐릭터를 얻은 뒤 성실한 이미지로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고 있다. 윤형빈은 선배 이수근의 활약에 존경을 표하며 자신도 ‘국민 개그맨’으로 거듭나길 희망했다.

“수근이 형처럼 저도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인간 윤형빈’은 50%도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제 정말 시작인 거죠. ‘남자의 자격’ 속 캐릭터는 일부러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저를 그대로 드러냄으로 인해 잡혀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부족하지만 서서히 ‘남자 윤형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윤형빈이 ‘왕비호’로 사랑받은 지 벌써 3년. 매주 녹화를 마칠 때마다 독설 도마에 오른 연예인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가슴 한 구석을 무겁게 만들지만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는 시청자가 있기에 관객과의 호흡을 늦추지 않을 예정이다.

‘왕비호 윤형빈’과 ‘남자 윤형빈’의 괴리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남자의 자격’을 보면 좋을 듯하다. 그는 ‘연인을 위한 연서를 쓰는 로맨티스트’(널 위해 준비했어 편), ‘여섯 형제를 얻은 막내둥이’(청춘에게 고함 편),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천진난만한 청년’(신입사원 편) 등으로 변주되어 그 안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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