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손병호 몰랐던 사람, 손가락 다 접어”

[쿠키人터뷰] “손병호 몰랐던 사람, 손가락 다 접어”

기사승인 2010-12-17 10:45:00

[쿠키 연예] 손가락 다섯 개로 브라운관을 장악한 배우가 있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 시즌3’ 인기 코너 ‘손병호 게임’의 주인공 손병호(48)다.

‘손병호 게임’은 질문에 해당하는 사람이 폈던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게임으로, 다섯 손가락을 다 접으면 벌칙을 받게 된다. 간단하면서도 재미있어 중독성이 강하다. 손병호가 ‘해피투게더 시즌3’에서 무심결에 “이거 알아요?” 하면서 보여준 게 MC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감각 좋은 방송인 유재석이 “PD님. 이거 ‘손병호 게임’이라고 이름 짓고 계속 하면 안 될까요?” 제안했고, 정희섭 PD가 흔쾌히 수락했다. 이후 출연하는 사람들마다 ‘손병호 게임’을 하게 됐고, ‘손병호’라는 이름 석 자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됐다.

연극배우 출신의 연기파 배우 정도로만 알려졌던, 이름보다는 얼굴이 익숙했던 ‘무명 배우’ 손병호는 이 코너를 계기로 그간의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그를 알아보고 손가락을 피면서 “게임하자”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도 있고, 음식점에 가면 서비스라며 푸짐한 음식과 악수를 청하는 이도 있다.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인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브라운관에 거세게 불고 있는 ‘중년돌’ 중 한 명으로 거론될 만큼 ‘핫한’ 배우가 됐다.

손병호와의 인터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기분 좋았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인터뷰이(interviewee)라 대면이 끝나고 난 뒤에도 여운이 강하게 남았다. “감사함이 나를 긍정적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늘 웃고 있으니 좋은 일들만 생긴다”는 그의 말처럼 입가에 웃음을 떠나지 않게 해 준 손병호와의 인터뷰는 100분 가까이 진행됐다. 시간적 여유만 된다면 돗자리를 깔고 들어도 될 만큼 그의 인생 스토리는 흥미진진했다. 굽이진 인생의 주름만큼이나 행복과 기쁨도 배어있었다. 두 딸의 아빠이자 ‘다섯 손가락’으로 인생 역전을 맞은 손병호. 그는 요즘 어떤 기분일까.

“유재석 씨와 ‘해피투게더’ 제작진에게 감사한 마음이죠. 그때 출연을 계기로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거든요. 전에는 ‘아 저 아저씨 누구지?’ 얼굴은 봤어도 이름을 몰랐다는 반응이었는데, 요즘에는 ‘손병호 게임 주인공 아저씨다’ 이렇게 먼저 이름을 불러주시더라고요. 제 안의 뭔가가 꿈틀대는 느낌이 강하게 와요. 제가 열심히 사는 것을 지켜봐주시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행복하고 감사하죠. ‘이렇게 얻은 복을 어떻게 잘 다듬을까’ 요즘 그 숙제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웃지 않으면 차가운 인상인데다, 극중에서는 주로 악인으로 출연했기에 그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손병호 게임’을 통해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도 험악한 인상에 나쁜 역으로만 나와서 다들 ‘악인’으로만 기억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손병호 게임’에서 보여준 제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졌나 봐요. 미니홈피에 쪽지나 글로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많아졌어요. 그 분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엄마 아빠를 웃게 해줘서 감사하다’ 그러더라고요. 그 글을 보면서 ‘아 이 시대가 젊은이만 웃고, 중년층은 웃음을 잃어가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죠. 같은 40대가 나와서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니까 대리만족을 느끼시는 것 같고요. 중년층에게 웃음을 선물할 수 있어서 가장 기쁩니다.”

손병호가 손가락 게임을 습득하게 된 계기는 등산을 통해서다. “숨 쉴 곳을 찾자”는 마음으로 5년 전부터 산을 타기 시작했다. ‘MAM 산악회’ 회원들과 게임을 즐기면서 손가락 게임을 알게 된 것. ‘게임’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인정이 쌓여나가는 것을 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게 됐다. 무엇이 그를 ‘긍정적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슬픔 뒤에 기쁨이 온다고, 지난해 부친과 지난 4월 친형을 잃고 나서 인생을 새롭게 보는 눈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자는 것이었다. 매사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니 웃음이 저절로 피어났다. 짜증 나던 일도 화가 나는 일도 부쩍 줄어들었다. 인상도 점점 웃는 상으로 바뀌어갔다. 모든 게 감사에서 비롯됐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아버지와 형님을 비슷한 시기에 떠나보내고 나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지금 제 배우 인생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만큼요.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도 들었고요. 그러다가 든 생각이 매사에 감사하자는 것이었어요. 감사함이 조금씩 커지면서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지금 이렇게 알려지게 된 것도 두 분이 지켜봐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이 자주 불려 지면 좋다고 하던데 쉰을 앞두고서야 제 인생에도 꽃이 피나봅니다.”



손병호는 연극 ‘그 여자 사람잡네’에서 단역 경찰로 출연하며 배우로 첫 발을 뗐다. 벌써 29년 전 옛날 이야기가 됐다. 이후 <소풍> <파이란> <오아시스> <천년의 수인> <유령> <목포는 항구다> <알 포인트> <화려한 휴가> 등에 출연했지만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 이름 석자를 확실히 각인시키지 못했지만 그는 조바심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듯 연기 내공도 유명세도 천천히 차오르기를 기다렸다. 빈약한 연기력으로 반짝하고 사라지는 배우가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선배 신구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월10만원에 살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지냈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받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몇 년을 하다 보니까 같이 했던 친구들은 TV다 영화다 다들 떠나갔고요. 제가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구 선배가 한 말 때문입니다. ‘병호야. 10년 동안 앞도 옆도 보지 말라. 1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면, 그때 다른 곳을 쳐다봐도 늦지 않다’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래. 내가 10년 동안 이 연극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10년 동안 철저하게 한 길만 걸으면서 돈도 명예도 욕심 부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비우니 오늘날처럼 이렇게 제 이름을 알리게 된 것 같고요.”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다. ‘와이’(Why·왜)라는 물음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이 작품에서 내 역할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숱하게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단다. 그렇게 자꾸 묻다보면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밖에 없다고. 지치지 않는 그의 에너지는 바로 이 ‘물음표’에서 왔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떤 힘든 시간이라도 즐거워지더라고요. 연기를 할 때에도 ‘왜’라는 질문에 제가 바로 대답을 할 수 없다면 그건 흔들리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생각이 들면 전 바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연구하죠. 대답을 확실히 알게 되면 그에 따라 눈빛도 행동도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왜’라는 질문의 답을 얻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미련한 놈이 이긴다고 언젠가는 저를 인정해주는 분들이 생길 것 같고요. 이제 조금씩 저를 알아봐주시는 것 같고요.”

그의 끈기와 진심이 은은한 향기가 되어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영화 <대한민국 1%>에서는 강철인 중사 역으로 선 굵은 연기력을 보여줬고, SBS 화제작 ‘자이언트’에서는 신들린 연기력으로 ‘미친 존재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현재 출연 중인 OCN ‘야차’에서는 비운을 감춘 악역 ‘강치순’으로 “손병호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라는 호평을 얻고 있다. 내년 3월에는 주연배우로 출연하는 영화 <놈의 역습>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있더라고요. ‘연기란 무엇인가’ ‘나는 왜 배우로 사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지금껏 다양한 배역으로 여러분을 웃기고 울렸다면 앞으로도 여러분 곁에서 즐거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요즘 연말연시를 맞아 술자리 많으시죠? 스마트폰이다 인터넷이다 대화가 단절되는 것보다는 ‘손병호 게임’ 하시면서 화기애애한 시간 보내는 건 어떨까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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