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고지전’ 이제훈 “나만 잘하면 된다는 부담 컸다”

[쿠키人터뷰] ‘고지전’ 이제훈 “나만 잘하면 된다는 부담 컸다”

기사승인 2011-07-22 12:01:00

"[쿠키 영화] 배우 이제훈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공존한다. 해맑고 선한 느낌을 주다가도 언뜻 언뜻 살기 어린 차가운 분위기가 감돈다. 선과 악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외모 덕분인지 그는 스펙트럼이 큰 연기를 자연스레 오가고 있다.

지난 2009년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친구사이?’에서 게이 석이로 등장해 파격적 연기를 펼치기도 했고, 지난 3월 개봉한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에서는 고등학교 일진(싸움을 잘하는 아이) 기태를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그를 두고 ‘신선한 발견’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기에서만 스펙트럼이 큰 게 아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크고 비싼 선물이 아니더라도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상대를 배려하는 세심한 선물로 감동을 주는 자상한 사람”이라고 그를 설명했다. 그러나 “응급실에서 퇴원한 다음 날에도 계획된 운동을 하러 가는 독한 면을 지녔다”며 “현실에서도 강인함과 따뜻함의 두 가지 매력이 공존한다”고 전했다.


여세를 몰아 지난 20일 개봉한 장훈 감독의 영화 ‘고지전’에서 톱스타 신하균, 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영화는 1951년 6월 전선 교착 이후 25개월간, 싸우는 이유조차 잊은 채 서로를 죽이며 싸워야만 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제훈은 악어중대 대위 신일영으로 등장해 어린 나이에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대원을 이끄는 인물을 연기했다.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영화 속 강렬했던 인상과 달리 상당히 자상하고 서글서글한 모습이었다.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며 주문한 ‘아이스 라떼’가 나오자 활짝 웃어 보이는 천진난만함을 보였다. 그러나 영화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확고하고 진지했다.

영화 개봉 후 고수와 신하균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고 “‘고지전’ 최고의 수혜자는 신예 이제훈이 될 것”이라는 세간에 평을 듣고 있는 기분은 어떨까. “다 같이 고생해서 만든 작품인데 그 수혜자로 지목되니 기분이 좀 그렇다”면서 “대선배님들과 함께 작업한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행운”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행운을 지키기 위해 6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한 치의 긴장도 늦출 수 없었다. “감독님과 배우 선배님들 모두 워낙 베테랑이시고 자신이 맡은 부분을 완벽하게 해 내신다. 그래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컸다. 더 집중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표정에도 긴장감이 서렸다.

전쟁영화이다 보니 촬영하며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그는 “아무리 따뜻하게 난로를 쬐고 촬영에 임해도 미미할 뿐이었다. 덜덜 떨다가도 촬영에 들어가면 춥지 않은 척을 했다. ‘지금은 여름이고 땀을 흘리며 촬영하고 있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버텼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 외에도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고 오르막을 기어오르는 것은 기본, 산속을 뛰어다니다 보니 무릎이 까지거나 손톱이 깨지는 일은 예삿일이었다. “너무나 자주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았다”며 “다치면 서로 걱정하고 챙겨 줘야 하는데 워낙 빈번히 발생하다 보니 작은 부상 정도는 스스로 치료해야 했다”고 함께한 배우들의 고생담을 들려 줬다.



산전수전 겪으며 완성한 영화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자신에게 준 점수는 고작 50점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60점을 줬다. 그런데 두 번 째보니까 첫 번째 때 보지 못했던 점들이 눈에 띄더라. 고생하며 힘들게 찍었기에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지만, 지금은 50점이다. 한 번씩 볼 때마다 10점씩 깎일 것 같다”며 웃었다. 오늘의 이제훈을 가능하게 한 이유가 끝없는 채찍질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함께 연기한 배우들의 말에서도 다시금 확인된다. 신하균과 고수는 이제훈을 두고 “촬영 내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정말 열정적으로 연기했다”면서 “자기관리가 철저한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이러한 평가를 전하자 이제훈은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은 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요?”라고 되물었다. “선배님들과 어제도 만났는데 제게는 이런 말을 잘 안 해 주세요. 역으로 생각해 보니 저 역시도 선배님들께 고마운 점을 직접 말씀드리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존경하는 선배님들께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기쁩니다.”

이야기는 고수, 신하균, 류승수 등 대선배들과 함께 연기한 것에 대한 회상으로 이어졌다.

“6개월간 영화를 촬영하며 선배님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하늘같은 선배님이고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봐 오던 분이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는데 가끔 선배님들의 초췌한 모습들을 보면서 ‘진짜 동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이지 좋은 추억이었고 앞으로도 많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도전하고 싶은 연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구분 짓지 않는다”고 말했다. “10년, 20년 연기를 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갈 길이 멀고 해 보지 않은 것들이 많다”며 “뭘 하든 던져 주시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 드리겠다”고 눈을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이제훈은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배우 송강호, 전도연, 이병헌이 나오는 영화는 꼭 챙겨 본다며 “마찬가지로 극장에 제가 찍은 영화 포스터가 걸렸을 때 관객들이 ‘이제훈 나오는 영화구나. 보러 가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확고한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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