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방송진단] ‘사람 잡는’ 드라마 졸속 시스템…책임공방 언제까지

[Ki-Z 방송진단] ‘사람 잡는’ 드라마 졸속 시스템…책임공방 언제까지

기사승인 2011-08-08 14:53:01

[쿠키 연예] “이건 사람 죽으라는 거예요.”

배우와 매니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인터뷰 등의 공식적 자리는 물론이고 사석에서는 더욱 더 적나라한 한탄과 푸념이 오고 간다. ‘생방송 드라마’라고 일컫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 때문이다.

고질적인 분위기라 여겼던 이러한 제작 환경은, 최근 배우들의 교통사고가 잇따르며 변화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마치 생방송 프로그램처럼 방송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촬영을 하고 편집해 내보내는 열악한 환경의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생방송 드라마’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편집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음향 사고 등이 난무하는 것은 물론이고 출연자의 부상으로 드라마가 결방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종종 일어난다. 또한 며칠 간 이어지는 밤샘 촬영으로 배우와 매니저, 스태프들은 피로 누적으로 각종 사건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뿐만 아니라 ‘쪽대본’으로 인한 배우와 작가의 갈등이 표면화되며 공방이 오가기도 한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피로 누적으로 인한 사건 사고는 늘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상황에서 지방 촬영 스케줄로 인해 장시간 운전할 때 사고 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한 매니저는 “몇몇 대형 매니지먼트를 제외하면 수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최소한의 인력으로 회사를 꾸리게 되고, 매니저들을 많이 포진시키지 못한다”며 “스케줄을 나누지 못해 피로가 쌓이고, 늘 사건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한다.

‘생방송 드라마’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생방송 드라마,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지난 4월 방송 관계자들의 토론회가 열린 것을 비롯해 그동안 꾸준히 드라마 졸속 제작 시스템에 대한 논쟁이 열리긴 했다. 그러나 결국 변화의 필요성만 확인했을 뿐 변한 것은 없다. 방송 관계자들은 ‘바뀌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쉽게 바뀔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쪽대본’이 난무하는 촬영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3일 동안 겨우 5시간 눈을 붙였다”는 A배우의 매니저는 “처음에는 이렇게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 갈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캐릭터가 인기를 얻자 대사가 확 늘어났다”며 “하루아침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곳이 드라마 촬영 현장이다. 언제나 ‘스탠바이’ 상황으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안정적 매니지먼트에 속해 있는 배우의 경우다. 현장에는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니는 배우들이 더 많다.

본사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의 경우엔 좀 낫다. 외주 제작이 늘어나면서 제작비 절감을 위해 이러한 경향이 더 짙어졌다. 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과거의 미니시리즈는 최소 두 달 전에 촬영을 시작했지만, 요즘에는 방송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와도 시작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모 중견 탤런트는 “연기자로서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 그저 연기하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드라마 졸속 제작 시스템의 대안으로 사전제작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사전제작은 영화를 만드는 시스템과 비슷하다. 방영하기 전에 미리 모든 제작을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전제작은 이미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했다. 100% 사전 제작됐던 MBC ‘로드 넘버원’은 화려한 연출진과 배우들에도 불구하고 제작비 100억 원대를 무색케 하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해 대표적 실패작으로 꼽힌다. SBS ‘파라다이스 목장’ 또한 6개월 촬영이 이뤄지고, 6개월간 후반 작업을 거친 사전제작 드라마였으나 시청률이 8%에 머물렀고, 지난해 촬영을 마친 드라마 ‘버디버디’는 1년 간 지상파 편성이 안돼 떠돌다 최근 케이블TV tvN에 겨우 안착했다.

사전제작 드라마는 ‘쪽대본’과 바쁜 촬영스케줄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변수가 많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종의 모험에 가깝다. 또한 낮은 시청률을 보여 온 그간의 사례를 통해 ‘징크스’처럼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드라마는 시청률이 생명인 만큼 시청자의 목소리 또한 중요시 된다.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기도 하고, 결말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이미 다 만들어진’ 드라마는 시청자와의 소통이 막혀 있다는 위험 요소도 무시하기 어렵다.

광고 또한 문제다. 드라마 속 PPL(간접 광고)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요즘, 편성이 확정되지 않은 작품에 신제품을 광고하고 싶은 회사는 많지 않다.

그 결과 최근에는 ‘절반의 사전제작’을 대안으로 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으면 돌이킬 수 없는 100% 사전 제작과는 달리 위험 요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로 KBS 대하드라마 ‘광개토태왕’의 경우, 18부가 방송된 시점에서 촬영은 24회까지 마쳤고, 대본은 30회까지 나와 있었다. 시청률은 18%를 넘어 상승세를 보였다.

졸속 제작의 원인은, 거슬러 올라가면 마치 ‘쪽대본’을 내놓는 작가에게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작가들은 방송사들의 시청률 경쟁으로 인해, 시청자의 반응을 보며 드라마의 흐름을 바꾸려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리 써놓아 봤자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해 ‘쪽대본’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결국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사들의 상업적 측면과 밀접해 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한류 드라마들이 해외에서 지금도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졸속 제작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며 “해외 판권의 수익이 적지 않은 요즘, 이러한 졸속 제작이 계속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드라마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방송계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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