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최근 한 대학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조숙증 치료 환아가 2004년에 비해 6년간 무려 18배나 급증했다. 그 중 97%는 여자아이로, 같은 기간 치료받은 남자아이에 비해 35배나 많았다.
성조숙증은 만 8세 이전의 여자아이나 만 9세 이전의 남자아이에게서 사춘기에 나타날 수 있는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가슴 멍울, 음모, 초경 등 2차 성징의 징후를 살피는 것 외에도 골 연령 검사, 내분비 검사 등으로 진단한다.
◇환경오염과 잘못된 생활습관이 성조숙 유발= 성조숙증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히 드러난 것은 없다. 선천적으로 뇌에 관련된 질병이나 자궁에 관련된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후천적 요인으로 성조숙증이 생긴다고 본다. 비만, 육식 위주의 식생활,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 과도한 지방 섭취, 환경오염이나 1회 용품 사용으로 인한 환경호르몬 증가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 중 환경호르몬은 우리 몸속의 호르몬을 균형 있게 만들어주는 내분비계에 혼란을 줘 비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각종 플라스틱 제품이나 살충제 등에 환경호르몬을 발생시키는 제품들이 많다. 환경호르몬 외에도 성장촉진제를 먹으며 자란 가축이나 유전자 변형 음식물 또한 우리 몸의 내분비계를 혼란시키는 원인이 된다.
생활습관 또한 성조숙증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신체활동이 부족한 편이다. 과도한 학습에 시달리고 휴식도 컴퓨터 게임이나 TV 시청으로 대신한다. 또 고열량 음식을 많이 먹는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성장을 방해하는 비만을 불러오는 셈이다.
◇생리를 늦추면 키가 더 자랄 수 있을까?= 엄마들이 성조숙증을 경계하는 이유는 이것이 아이의 키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초경을 빨리 시작하게 되면 향후 2년 내에 성장이 멈춰 어른 키에 도달한다. 이런 이유로 내 아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성적 발달이 빠르다면 키가 빨리 멈춘다고 생각해 무조건 이를 억제하려고 한다. 심지어 ‘생리 늦추는 약’을 찾기도 하고 성호르몬 억제제, 성장호르몬제를 맞아야 할까 고민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이 성장에 대해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우선 생리를 하면 성장이 멈춘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생리가 시작돼 아이의 성장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숙해 성장이 멈출 때가 됐기 때문에 생리를 하는 것이다. 생리란 여성으로서 아기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는 신호다.
강문여 아이누리한의원 원장(목동점)은 “초경 시기가 빨라진 것은 성조숙증 때문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영양상태가 좋아져 발육이 빨라졌기 때문이다”며 “생리를 일찍 시작하면 키가 안 큰다는 원리대로라면 요즘 아이들은 예전 아이들에 비해 키가 작아야 맞지만 초경을 2~3년 일찍 시작한 요즘 아이들이 부모 세대보다 월등히 큰 키를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성호르몬과 성장호르몬, 아이 성장에 모두 필요= 또한 성호르몬은 억제하고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는 치료 역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강문여 원장은 “아이 키가 자라는 데는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것을 억지로 조절한다면 오히려 아이의 정상적인 성장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춘기에 성장 속도가 빠른 이유 중 하나는 왕성한 성호르몬의 분비 때문이다. 성호르몬이 성장판을 자극시켜 키를 키우기도 하지만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도와주기도 한다. 따라서 성적 성숙을 늦추겠다고 성호르몬 억제 치료를 하면 오히려 성장 속도가 줄어들 수 있다. 성호르몬은 늦추는 치료가 아니라 성호르몬이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가 중요하다.
또한 호르몬을 조절하는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에 의한 의학적 소견과 판단으로 이뤄져야 한다. 부모가 단순히 생리를 늦추거나 키를 더 키울 목적으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성조숙이 오더라도 모든 아이가 치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적 성숙이 급속도로 빨리 진행될 때, 예측한 최종 키가 너무 작을 때, 성조숙으로 인해 아이의 정서나 심리 상태에 문제가 있을 때 등에 한해 전문의의 진단 하에 고려해봐야 한다.
◇당황하는 아이의 마음부터 다독여야= 아이가 성조숙증의 기미가 보일 때 부모도 당황스럽지만 가장 난감한 것은 아이 자신이다. 또래 친구와 다른 몸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초경을 시작해 신변처리를 힘들어 할 수도 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 마음부터 다독이는 일이다. 아이에게 일어난 신체변화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설명해주고, 전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며, 신변처리 시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또 아이 앞에서 너무 걱정스러운 표정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한다. 아이는 마치 자신이 큰 병에 걸린 양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에 상처받을 수 있다. 부모 먼저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아이 역시 자신의 신체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미 성조숙 단계지만 아이 키가 또래보다 10㎝ 이상 월등히 크다면, 여기서 조금만 노력해도 아이는 평균 키만큼 충분히 자랄 수 있다. 성조숙증으로 판명될 때는 아이의 현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아이 키가 꾸준히 자랄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성장 치료를 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유산소 운동이나 생활 개선, 식습관 교정 등을 통해 아이의 성장 잠재력을 높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주호 기자 epi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