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광해’라 쓰고 이병헌이라 읽는 영화

[리뷰] ‘광해’라 쓰고 이병헌이라 읽는 영화

기사승인 2012-09-12 10:00:01

[쿠키 영화] 대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정치의 계절. 이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어떤 목적성을 가져 의혹의 눈길을 받기도 하고, 어설프게 현실 정치를 비꼬아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난 배우와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담게 되면 의혹과 비난은 사라지고 사람을 움직이는 메시지만 남게 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가 대중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배우 이병헌이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했다는 이야깃거리 때문이었다.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와 추창민 감독이 이병헌을 캐스팅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에피소드는 이런 관심의 파장을 한층 크게 만들었다.

그러나 ‘광해’가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는 ‘광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더해진다. 정치의 계절에 ‘광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이병헌이라는 배우와 사극 장르가 주는 힘. 이에 더해 ‘진정한 리더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정치적이면서 진중한 주제가 다뤄진다.

추창민 감독은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연출법으로 이야기를 묵묵하게 풀어갔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일기 중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이르라’는 한 줄의 글귀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광해군 재위 시절 사라진 15일간의 기록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양면성으로 대표되는 왕 광해. 그를 조명하는 데 있어 그의 대리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인물(하선)이 있었다는 설정이다. 하선은 도승지 허균(류승룡)이 지시하는 대로 왕 대역에 충실하다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진정한 왕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자신의 안위와 왕권만 염려하던 광해와 달리, 비록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진정한 백성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가슴 따뜻한 하선의 모습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이병헌은 자칫 지루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코믹이라는 양념을 더해 지루할 틈 없이 극을 이끈다. 슬랩스틱은 물론이고 ‘이병헌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구진 장면을 연출한다.

물론 ‘해피투게더’나 ‘그해 여름’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적인(?) 인물을 연기했지만 최근작들인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등의 작품을 살펴보면 ‘광해’에서는 새로운 이병헌을 발견한 느낌을 준다.

코믹함만이 영화에 힘을 불어넣은 것은 아니다. 이병헌은 의심과 불안에 가득 찬 왕 광해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하선,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왕 광해 흉내를 내는 하선의 세 가지 모습을 미묘한 표정, 눈빛연기, 자유자재로 오가는 음성변화로 흡수시켰다. ‘이병헌이 아니면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극 초반에 등장하는 엉덩이를 씰룩쌜룩 흔드는 광대 하선이 허균이 시킨 대로 광해의 행동과 목소리를 따라하는 장면은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극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도 조화롭다. 전작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카사노바 성기로 등장했던 류승룡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기를 뺀 냉철한 눈빛으로 또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한효주는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두 명의 왕이 사랑한 여자 중전으로 분해 단아한 매력을 발산하고, 그동안 감초 연기를 해왔던 김인권은 호위무사 도부장으로 분해 극의 긴장감과 밀도를 더한다. 13일 개봉.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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