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가 돼 버린 북한의 전쟁협박

코미디가 돼 버린 북한의 전쟁협박

기사승인 2013-03-30 13:07:01

[쿠키 정치] 북한의 전쟁 위협이 갈수록 유치해지고 있다. 위협 수위를 높이기 위해 무리하다보니 곳곳에서 ‘삑사리’가 나고 있다. 전쟁 스릴러 영화가 졸지에 코미디로 장르가 바뀐 셈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새벽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긴급 작전회의를 주재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의 초점은 김정은 위원장이나 그를 둘러싼 김락겸 전략로케트 군사령관 등등의 군인들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이들 뒤편에 ‘전략군 미 보토 타격 계획’이라고 크게 써붙여 걸어 놓은 종이판에 카메라의 포커스를 선명하게 맞춰 놓았다. 그 뒤로는 미국 태평양 연안 지도와 함께 잠수정 40척, 상륙함 13척 등등의 재원이 적혀 있었다. 잠수함과 상륙함을 동원해 캘리포니아로 진군할수 있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스터김(김정은)의 노르망디 스타일 상륙작전이 궁금증을 일으킨다”면서도 “대규모 군사 행동을 앞둔 나라치고 자기네 전투 계획을 전세계에 중계방송하는 곳은 흔치 않다”고 비꼬았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도 “이런 군사 명령은 기밀 사항”이라며 “우리가 보기에 북한은 전세계를 상대로 심리전을 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급기야 30일에는 ‘정부·정당·단체 특별성명’을 통해 “이 시각부터 남북관계는 전시상황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성명은 “조선반도에서 평화도 전쟁도 아닌 상태는 끝장났다”며 “미국과 괴뢰패당이 군사적 도발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국지전으로 한정되지 않고 전면전쟁, 핵전쟁으로 번져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첫 타격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가 녹아나고 남조선 주둔 미군기지는 물론 청와대와 괴뢰군기지도 동시에 초토화될 것”이라고 한껏 전쟁 위협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남과 북은 엄밀히 따지면 지난 63년 동안 계속 전시상황이었다. 한반도는 1950년 북한의 남침 이후 전쟁을 잠시 멈춘다는 정전협정만 맺은 상황이고, 게다가 정전협정에 남측 정부는 서명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전쟁선포를 하려면 김정은이 나서든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명령을 하든지 해야지 시민단체와 정당과 정부가 발표한 특별성명은 종잇조각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주 북한이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공개한 전쟁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전쟁을 시작하면 3일만에 남쪽을 다 점령할 수 있다는 내용에다 지엄한 목소리로 북한군의 위용을 찬양한 일종의 뮤직비디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영상과 내용이 조악해서 남쪽 주민들이나 미국에 불안감을 주기는커녕 안쓰러운 연민의 감정마저 불러일으켰다.

코미디의 절정은 사진 조작이었다. 북한이 서해에서 대규모 상륙작전 훈련을 했다며 공개한 사진은 상륙정의 숫자를 부풀리려고 ctrl+C와 ctrl+V를 되풀이한 흔적이 역력했다. 북한은 남쪽의 방송국과 은행을 해킹하던 컴퓨터 실력을 아직 비주얼 분야에선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남쪽 공직자들이 논문을 표절할 때에도 이렇게 유치하게 복사하지는.... 음. 이건 아니구나. 어쨌든, 북한의 전쟁 위협이 또다시 전세계에 B급 서브컬쳐의 패러디 대상으로나 써먹힐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 해안까지 날아올만한 능력이 없고, 핵무기도 미사일에 장착될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증거가 없다”며 오히려 “남쪽을 향한 사이버 공격과 천안함 사건처럼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되지만 북한을 향해 보복할 수 없는 조용한 위협이 더 걱정된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저렇게 전쟁 협박을 매일 거듭하는 것이, 이란을 비롯한 중동 문제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미국의 관심을 한반도로 끌어오려는 것이란 점을 누구보다 미국이 더 잘 알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북한과 휴전선을 접하고 있는 현실. 한반도 남쪽에 있는 우리는 북한의 전쟁 협박을 단순히 유치한 장난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연출하는 코미디 영화를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언제 얻어 맞을지 모르는 불쌍한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다. 북한은 핵실험 몇 번 하고 미사일 몇 번 쏜 것으로 저렇게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고, 미국은 여기에 미국이 B-52 폭격기와 스텔스 폭격기인 B-2를 한반도 상공에 띄우는 것으로 대응하는데, 우리는 이를 지켜보며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처지다.

그러니 차라리 전쟁영화의 주인공이 돼 북한의 협박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자로 출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심지어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해 북한 정권을 공포에 몰아 넣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B급 코미디가 돼 버린 실패한 스릴러물을 블록버스터 액션 대작처럼 취급하는 것은 오히려 영화 흥행을 도와 제작자인 북한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

북한이 저렇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정확하게 분석해 냉정하게 대응하고, 만에 하나 북한이 실제 도발을 해올 경우 지난 정권때처럼 연거푸 당하면서 땅을 치고 눈만 붉히며 불쌍한 조연이 되지 않도록, 군과 정부가 만반의 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도 군인도 국가정보원도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움직이면 된다. 제대로 대처만 하면 저 코미디는 흥행 쪽박으로 끝나버리게 될 것이 틀림없다. 김정은이 빨리 그걸 깨닫고 얼른 이설주 주연의 로맨스 영화나 굶어죽어가고 있는 북한 인민들에게 자유와 밥을 쥐어주는 휴먼 드라마를 만드는데 열중한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여기서 텔레파시를 연마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쟀든 평범한 국민들까지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코미디는 코미디로 끝내도록 하자. 자신의 장르가 뭔지도 모르는 형편없는 영화라면 ‘걍’ 저러도록 냅두자.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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