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집시다. 승리자가 됩시다”… 십여년전 신해철이 그대에게 남긴 말

“행복해집시다. 승리자가 됩시다”… 십여년전 신해철이 그대에게 남긴 말

기사승인 2014-10-29 15:54:55

고(故) 신해철을 떠나보내기가 아직 힘든 모양입니다.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인터넷에는 그가 과거에 했던 말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습니다.

그 중 특히 마음을 잡아끄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996년 4월부터 1997년 9월까지 진행했던 MBC FM ‘음악도시’에서 하차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매일 음성을 통해 만나던 청취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왜 사느냐 물으신다면’

“저는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어서 철학과를 건방지게 진학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춘기적인 우쭐함이었던 것 같네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 그런 게 아니었어요. 한문에는 재주도 없었고. 그래서 대답은 포기하고 그냥 ‘잊고 사는 게 훨씬 더 편하다’ 그런 것만 배웠습니다.

그런데 ‘음악도시’를 그만 두는 이 시점에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대답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자아실현? 이런 거창한 얘기 말고 그냥 단순·무지·무식하게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요.

우리가 찾고 있는 행복은 남들이 ‘우와’ 하고 바라보는 그런 빛나는 장미 한 송이가 아닙니다. 그저 수북하게 모여 있는 안개꽃다발 같죠. 우리 주변 여기저기 숨어있는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소중하게 관찰하고 주워 모아서 꽃다발을 만들었을 때 그 실체가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스스로 챔피언이 됩시다’

“‘인생은 경쟁이다’ ‘남을 밟고 기어 올라가라’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면 딴 놈들은 멀거니 쳐다볼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반납하라’ ‘인생은 잘 나가는게 장땡이고, 자기가 만족한 정도보다는 남들이 부러워해야 성공이다’….

이런 논리들. 우리는 분명 거절했습니다. 이곳은 우리들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였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아무 힘이 없어 보이죠. 하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경쟁과 지배보다 남들에 대한 배려,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 등으로 가득한 도시가 현실로 나타날 거라 믿어요.

잘 나서 돈이 많아서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것. 그렇게 되면 대통령도 재벌도 우리와 비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여러분들이 그 안개꽃다발 행복을 들고 있는 이상 누구도 여러분들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에게 언제나 승리자고, 챔피언일 것이거든요.”


‘여러분이 나의 자랑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우리 꿈 많은 백수, 백조들. 제가 얼마나 백수들을 사랑하는지. 또 왕청승 우리 싱글들, 발랑 까진 고딩들, 자식들보다 한술 더 뜨던 그 멋쟁이 푼수 부모님들, ‘여자친구의 완벽한 노예다’라고 자랑하던 그 귀여운 자식들. 그리고 속마음은 학생들과 같은 선생님들, 아이스크림 가게 아저씨, 청춘이 괴로운 군바리.

음악도시가 자리를 잡고 나니까 신해철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화젯거리가 되었고요. 여러분들이 바로 나의 프라이드고 자랑이고 그랬어요.”

“우리가
음악도시에서 나눈 얘기들은 정치 경제 토론도 아니었고 그냥 가족, 학교, 꿈, 인생얘기였습니다. 은연중에 우리는 그런 것들을 무시하도록 교육을 받죠, 더 나가서 세뇌 받고 자꾸만 내가 가진 것을 남들과 비교를 하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자꾸 비교하며 살면 결국 종착역도 안식도 평화도 없는 끝없는 피곤한 여행이 될 뿐이죠. 인생살이는 지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이 여행이라고 치면 그 여행의 목적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창밖도 좀 보고 옆 사람하고 즐거운 얘기도 나누고 과정이라는 것.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요.”


마지막 방송 녹취록이 인터넷에 회자되면서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마왕의 굴곡진 인생을 관통하는 강인함을 보여주는 글이다” “신해철이 이렇게 따뜻한 사람인 줄 몰랐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위안이 된다. 감사하다”는 등의 의견이 많습니다.

신해철은 당시 방송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끝인사를 했습니다. 지금 다시 들으니 마음이 쓰립니다.

“저의 객기, 무모함, 건방짐, 기타 등. 그런 것들을 모두 사랑해주신 여러분들께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