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포함] 표창원 “원세훈 법정구속… ‘법과 정의’ 불씨가 희미하게 살아 있다”

[전문 포함] 표창원 “원세훈 법정구속… ‘법과 정의’ 불씨가 희미하게 살아 있다”

기사승인 2015-02-11 00:05:14

"표창원 법죄과학연구소장이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판결에 대해 “법과 정의가 숨쉬고 있다”고 언급했다.

10일 표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땅에 법과 정의가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표 소장은 “윤석렬, 박형철 검사 그리고 김상환 판사 당신들 덕분에 그나마 우리나라 형사사법 제도에 ‘정의’이 불씨가 아주 희미하게나마 꺼지지 않은 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윤석렬·박형철 검사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다 보직해임돼 전보된 검사이고, 김상환 판사는 국정원 대선개입을 했다고 원 전 원장을 법정구속한 항소심 판사다.

표 소장은 “법과 정의의 한쪽 구속에서 고민하고 일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같은 형실과 현상이 너무 가슴아팠다”고 밝혔다. 이어 “징역 3년, 법정구속이라는 형량이 가볍다는 지적도 많고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괴담도 흘러 다니고 있다”면서도 “흔들리는 촛불같은 ‘법과 정의’를 지키려 애쓰신 모든 법조인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디, 이 판결이, 그리고 이 판결이 있기까지 지속된 대한민국 검찰 국정원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수수사팀 여러분의 노고가 대한민국에 ‘법과 정의’가 바로 서는 출발점이 되길 소망하고 기원한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국가와 사회, 형사사법제도, ‘법과 정의’를 염려하느라 생업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그날을 기다리며, 저는 제 자리에서 제가 할일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9일 항소심 재판부는 원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었다. ideaed@kmib.co.kr

표창원 법죄과학연구소장이 남긴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그래도 이 땅에 '법과 정의'가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윤석렬, 박형철 검사 그리고 김상환 판사.

당신들 덕분에 그나마 우리 형사사법 제도에도 '정의'의 불씨가, 아주 희미하게나마 꺼지지 않은 채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서민들이 '법과 정의'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법'은 힘있고 가진 자들의 전유물, 무기요 '정의'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 속에만 있는 '화석'이나 '유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무전 유죄, 유전 무죄'는 물론 '유권 무죄, 무권 유죄'가 마치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 회자되고 있습니다.

전 '법과 정의'의 한 쪽 구석에서 고민하고 일하며 살아 온 사람으로서, 이같은 현실과 현상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저도 어린 한 때, '정의로운 판사'가 되어 나쁜 놈들 혼내주고 억울하고 약한 사람들 한을 풀어주겠다는 꿈을 가졌던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도 무수한 어린 친구들과 청소년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연락을 받으며, 그들 중에서 '판사와 검사'의 꿈을 꾸는 친구들의 그 아름답고 소중한 꿈이 짓밟히고 더럽혀질까봐 두려워하는 스스로를 탓하고 원망해 왔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미국 연방 법무부 청사에 새겨진 글,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Justice Alone Sustains Society)"".

정치가 타락하고 경제가 왜곡되고, 교육이 썩어 문드러져도, 국가와 사회의 '정의 시스템' 혹은 '정의 인프라'인 형사사법제도가 제기능을 발휘한다면, 타락과 왜곡과 부패가 도려내지고 바로잡히고 제 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신뢰의 표현이지요.

대한민국 국민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을 믿겠습니까? 그래도 국민들 시민들 서민들이 '법과 정의'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그 썪고 이기적이고 부패한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이, 적어도 드러나고 밝혀지고 피해자가 확실한 범죄적 행위에 대해서만이라도, 단죄받고 처벌받는 모습에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빈부격차와 소외의 문제가 앞으로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나아지기는 어렵다고 많은 학자들이 예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법과 정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그리고 의존이 커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법을 공부하고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형성된다는 '리걸 마인드'. 법앞의 평등, 인간의 존엄성, 비례의 원칙, 보충성의 원칙...

마치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돈만 밝히는 의료장사꾼이 되는 순간 존경과 신뢰를 잃듯, 법조인이 '리걸 마인드'를 버리고 '정의에 대한 갈망과 집념'을 버리는 순간, '견', '떡'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여론 조작 사건'으로 잃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번 징역 3년, 법정 구속이라는 형량이 가볍다는 지적들도 많습니다. 아울러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괴담도 흘러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다양한 사건들과 우리 사회의 특수성과 사회적 분열들을 목도한 이 시점에서, 김상환, 윤석렬, 박형철 그리고 일일이 성함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이분들과 함께 흔들리는 촛불같은 '법과 정의'를 지키려 애쓰신 모든 법조인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이 판결이, 그리고 이 판결이 있기까지 지속된 대한민국 검찰 국정원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수수사팀 여러분의 노고가 대한민국에 '법과 정의'가 바로 서는 출발점이 되길 소망하고 기원합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국가와 사회, 형사사법제도, '법과 정의'를 염려하느라 생업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그날을 기다리며, 저는 제 자리에서 제가 할일을 하겠습니다."
김민석 기자 기자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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