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겸 소설가 이응준씨가 지난 16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작가 신경숙(사진)씨가 일본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신씨의 1996년 작품인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창작과 비평사)’에 수록된 단편 ‘전설’의 한 대목이 1983년 미시마 유시오가 쓴 ‘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주우세계문학전집 제20권)’에 실린 단편 ‘우국’ 일부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문단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충격도 크다. 여기에 신 작가와 출판사 ‘창작과 비평(창비)의 입장과 해명은 더 거센 파문을 촉발하고 있다.
신 작가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미시마 유키오는)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이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 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창작과 비평 출판사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두 작품의 유사성은 전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몇몇 유사성을 근거로 표절을 운운하는 건 문제가 있다”
1844년 미국의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추리소설 ‘The Purloined Letter(도둑맞은 편지)’를 발표했다.
이 추리소설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편지 도난사건’ 이야기이다. D장관이 왕비의 편지를 훔치고, 편지가 없어져 곤경에 처한 왕비는 파리 경시청장에게 수사를 의뢰한다.
결국 실패하고 사설탐정가인 뒤팽에게까지 수사의뢰가 들어간다. 이야기 마지막에는 독자 모두를 당황하게 만드는 결과가 나온다. 도둑맞은 편지는 다름 아닌 누구나 알고 볼 수 있는 편지꽂이에 꽂혀 있었다.
포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밝혀지기를 거부하는 비밀들이 있다.”
신 작가의 표절이 세상에 밝혀지기를 거부한 것은 신 작가 혼자만의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문학계의 의식적 침묵이었을까. 독자들은 신 작가와 창작과 비평사의 뻔뻔함과 문학계의 침묵에 편지꽂이에 꽃혀 있는 도난당한 편지보다 더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치인들에게만 들어왔던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의 이중적 해명에 이번 표절 파문은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소설보다 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느 누구보다 단어 하나에 민감할 작가인 신씨가 ‘진심’과 ‘진실’을 구분 못하지는 않을 텐데, 이 상황에서 어찌 진실을 숨기고 진심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부부상담을 하다가 아내들로부터 당황스러운 말을 들을 때가 많다.
“남편이 결혼 전에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고 해놓고 부엌 주변에는 들어온 적이 없어요”라며 화를 내거나 심지어 눈물을 보인다.
이럴 때 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 준다.
“결혼 전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남자의 ‘진심’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걸 ‘진실’로 믿는 것은 여자의 잘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간혹 진심과 진실을 혼동한다.
이번 신 작가의 해명이 독자들과 대중에게 실망을 안기는 데에는 표절을 했느냐 안 했느냐 보다도 ‘진심 없는 사과’가 훨씬 크게 작용했다.
독자들도 눈이 있고 생각이 있기 때문에 글을 보면 표절인지 아닌지는 정도는 안다. 그래서 신 작가의 표절이 ‘진실’이고, 신 작가에게 듣고 싶은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과 어려움을 독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사과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신 작가와 창작과 비평 출판사를 통해 또 다시 맞보면서 씁쓸함이 더 큰 것이다.
법을 다루는 판사와 변호사들이 가장 큰 불법을 저지르고,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 기업가들이 자신의 가족과 같은 직원들에게 인색하며, 국민의 대표라고 뽑아 놓은 정치인들인 선거 때만 국민을 부르짖으며 찾지 그 이후엔 국민이 죽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아이러니를 한국 대표 작가에게서 보게 된 국민들의 심리는 심리학적인 분석은커녕 상담치료도 통하지 않는 ‘고통’만 남는다.
메르스로 지친 국민들에게 마스크보다 반창고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아픈 마음에 반창고라도 붙여야 진정될 것 같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