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배우 유아인에 관한 가정법 한 가지. 만약 영화 ‘베테랑’에 유아인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액션 스타일리스트인 류승완 감독에 ‘부당거래’에서 호흡을 맞춘 ‘1000만 배우’ 황정민이 더해졌으니 그래도 흥행했을 확률이 높다. 다만 안하무인으로 점철된 재벌 3세 조태오 역할에 대한 회자는 지금보다는 덜 했을 것이다. 악역이라는 이유로 이미지 걱정하느라 선뜻 캐스팅에 응하는 젊은 배우들을 찾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사도’는 조금 다르다. 사도세자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한 인물이라 젊은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탐을 낸다. 여기에 1000만을 넘긴 ‘왕의 남자’로 검증된 이준익 감독의 사극 연출력이 가미된다. 상대역 송강호는 ‘사도’ 직전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으로 3000만을 동원한 흥행 보증수표다. 오히려 흥행에 실패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화려한 구성이다.
유아인은 ‘베테랑’과 ‘사도’를 모두 택했다. 재벌 3세와 세자라는 지위는 고생이 묻지 않은 곱상한 외모를 기본으로 한다. 기본적인 서사가 일대일 갈등 구조로 이뤄져 있다 보니 광기와 한의 정서는 필수다. 비극적인 결말을 감내하는 카리스마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황정민, 송강호라는 스무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연기 고수에 맞서 굴하지 않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 결과론이지만 유아인에게 조태오와 사도세자는 ‘맞춤옷’에 가까웠다.
본명이 엄홍식인 유아인은 미술을 전공하던 예고시절 길거리에서 캐스팅돼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첫 출연작은 KBS ‘반올림’(2003)이었다. 시원시원하게 잘 생긴 외모에 유쾌한 말 재주로 금세 주목받았지만 청소년 드라마라는 틀이 갑갑했다. 이내 고등학교를 그만 뒀다. 10대 시절부터 굵은 선택을 한 그는 ‘완득이’ 제작보고회 당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다. 억눌린 스트레스가 결국 자퇴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것 같다”고 고백했다.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환경에 성적도 부진한 고등학생 완득이는 유아인 바로 그 자체였다.
검정고시로 건국대 예술학부에 입학하고 나서는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로 데뷔한 이래 비주류 청춘 역할을 자처했다. ‘좋지 아니한가’(2007)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완득이’(2011) ‘깡철이’(2013) 등 영화에서도, KBS ‘결혼 못하는 남자’(2009) ‘성균관 스캔들’(2011)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 JTBC ‘밀회’(2014) 등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광기로, 때로는 한이 맺혀, 사연 있는 청춘을 토해냈다.
곱상한 외모지만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다. ‘하늘과 바다’(2009) 촬영 현장에서 장나라 아버지인 주호성이 감독 대신 메가폰을 잡는 등 월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해 결국 사달이 났다. 2011년 자신의 트위터에 “누가 되었느냐보다 누가 참여해서 무엇을 증명했는지가 중요하다”며 참정권에 관한 글도 올렸다. 그는 “내가 나의 세대에 속함에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우리를 지배하게 하지 말고 우리를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며 “이것이 가장 보통의 20대 청년이 아는 민주주의와 참정의 기본”이라고 했다. 또래 연예인들이 SNS에서 보여주는 오지랖 넓은 허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왔다.
잘 생긴 외모에 반항기 어린 태도, 작품을 선택하는 궤와 연극 연기에 가까운 테는 많은 연출자들의 세공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맞선 패기 있는 청춘 캐릭터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때 ‘베테랑’과 ‘사도’를 만났다. 류승완, 이준익 감독 모두 유아인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역할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자는 무려 1200만 관객을 넘어섰고 후자는 흥행 가도 중이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금수저를 입에 문 사람보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 연기가 더 좋다”며 “배우의 아름다운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어 비극을 아주 좋아한다”고 밝혔다. 타고난 청춘이다. 다음달 첫 방송되는 SBS ‘육룡이 나르샤’를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면 이 청춘은 어떤 30대가 되어 있을까.
△코너명: 자랑할 이, 형 형, 어찌 내, 횃불 거. ‘어둠 속 횃불같이 빛나는 이 형(혹은 오빠, 언니)을 어찌 자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뜻으로, ‘이 오빠 내 거’라는 사심이 담겨있지 않다 할 수 없는 코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