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 심리학] 사회 전체가 조율해야 할 ‘은둔형 외톨이’ 범죄

[이슈 인 심리학] 사회 전체가 조율해야 할 ‘은둔형 외톨이’ 범죄

기사승인 2016-12-15 14:59:48

생각에는 ‘행동’이 마치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그러나 생각과 행동이 괴리된 채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된다. 그 두려움이 악화될 시 찾아오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지난 10월19일 서울 강북구 번동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사제 총기로 경찰관을 살해한 성병대(46)는 은둔형 외톨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오패산터널 주변의 2평 남짓한 쪽방에서 지난 2013년부터 홀로 지내왔다. 이웃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 성병대와 같은 건물에서 살았던 50대 남성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성병대 집 인근 슈퍼마켓 주인 역시 “그가 종종 가게를 찾았으나 살갑게 대화한 기억은 없다”고 전했다. 

앞서 1월29일 서울 마포구에서 발생한 특수폭행 사건도 이웃과 단절된 은둔형 외톨이가 저지른 범죄였다. 가해자인 김모(22)씨는 자신의 아랫집에 사는 박모(42)씨를 찾아가 흉기를 휘두르며 10여분 간 난동을 부렸다. 박씨의 집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는 “김씨가 사회에 적응을 못한 채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는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이렇듯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다.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Hiki Komori)는 일본에서 1970년대에 만들어진 신조어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자신의 방과 같은 특정 공간에 틀어박혀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사람들이 비슷한 뜻으로 오해하는 오타쿠(御宅, otaku)는 자기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과 생각을 나눈다는 점에서 히키코모리와 같지 않다. 히키코모리는 타인과 감정·생각을 공유하지 않는다.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다 보면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검증력(reality testing ability)’이 떨어지게 된다. 현실과 망상을 구별하지 못 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검증력이 낮아진 이들은 망상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단단한 울타리를 치고 타인의 침입을 막는다. 누군가 자신의 세계에 대해 지적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시 즉각 공격에 나선다. 

사람들은 주변인들과 감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상대방과의 감정 교류가 안 되는 상태를 정신분열증 또는 조현병이라고 한다. 조현병은 ‘어울리고 조절하다’의 뜻인 ‘조(調)’와 ‘줄과 끈’을 뜻하는 ‘현(絃)’이 합쳐져 나온 단어다. 사회생활이란 현악기 조율과 같다. 상대방과 나의 마음·생각의 줄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서로 잘 맞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날 수도 있다. 

타인과 무엇인가를 공유할 의지가 없으면, 사람은 우울해진다. 이 증상을 기분부전증(dysthymic disorder)이라고 부른다. 기분부전을 의미하는 ‘dysthymic’은 ‘아프다와 나쁘다’를 뜻하는 ‘dys’와 마음을 뜻하는 ‘thym(라틴어 thumos)’이 합쳐진 말이다. 타인과 나를 잇는 마음의 줄이 끊어져 아픈 것이다. 또 타인과 나누는 대화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에 걸린다.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얘기를 나눠야 할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나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이 말은 ‘나’와 ‘밖’ 사이에 경계선을 만들어 구분을 짓는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안과 밖을 나누어서 ‘나는 안에 있고 너(타인)는 밖에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밖에 없다’는 말을 듣게 되면 의미를 빠르게 인식하고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열리지 않는 울타리가 되면 이미 손을 쓰기에 너무 늦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다 보면 언젠가는 그 감정이 내면에서 외면으로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날이 온다. 주변에서 “그만 우울해 하세요. 밝은 생각을 해야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어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미 우울의 굴에 빠져 있는 상태를 익숙하고 편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우울의 굴에 있으면 비관적인 생각은 ‘친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자연스레 ‘죽음’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게 된다. 밝은 빛을 보려면, 굴 밖으로 죽기 살기로 다시 나와야 한다. 그 힘이 바로 ‘의지’다. 긍정주의자는 ‘의지’로 비관적인 생각을 극복해 낸다. 

체감 온도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추위를 더 느끼는 이유는 어쩌면 내 마음이 추워서일 수도 있다. 견디기 힘든 날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가지고, 나와 가족의 ‘마음의 온도’가 잘 유지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슴 속에 의지라는 꽃 한 송이가 피어나면, 그 곳에서 봄이 시작된다. 용기를 내 빗장을 풀고 마음의 문을 슬그머니 밀어보면, 문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열린다. 매일 사람을 다시 만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힐 기회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재연(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세종시 휴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장)  

정진용,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정진용,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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