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서는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며내는 위선으로 치장돼 있었다. 그 답변서는 12월 16일 대통령이 헌법재판소(헌재)에 제출한 것으로,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지 않았음에도 국회가 낮은 지지율과 촛불집회를 근거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기에 탄핵소추안은 위헌이며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순실을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으로 미화시키는 부분에서는 악(惡)의 비열함까지 느껴졌다. 이러한 괘변으로 국민의 법감정은 다시 상처를 입었으며, 12월 9일 국회의 탄핵 가결에 담긴 민심과 234명의 국회의원의 의지도 부정됐다. 하지만 두 달간 광장에서 시민이 외친 ‘헌법에의 의지’는 여전히 살아있다. 국민의 75.7%에서 83.2%가 탄핵소추안의 헌재 인용을 원하며, 시민은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고 있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이끌었던 시민의 ‘헌법에의 의지’에 응답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수백만의 시민이 두 달간 매주 주말에 자발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외쳤던 적이 있었을까. 시민은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헌법 가치를 긍정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헌법에의 의지’를 다시 발견하고 공감했다. 이는 정치의 재발견이라고 볼 수 있다. 헌법은 국민의 정치생활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발견된 정치생활이 유지되도록 판결하는 것이야말로 헌재가 추구하고 있는 헌법의 실현 작용이 아닌가?
헌재는 국민이 재발견한 ‘헌법에의 의지’를 실현시킬 때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재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할 때 선출하는 권력인 국민의 일반의지에 따르는 것이야말로 민주국가의 원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확실한 증거에 기초한 형사재판과 다른 정치적, 윤리적 재판이다.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관은 어떻게 심판하는가? 헌법 105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돼 있다. 헌법재판관도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 하지만 어떤 양심이 역사적 책임과 헌법에의 의지를 실현시켜줄 수 있을까?
법 철학자 헤겔은 양심이 ‘형식적 주관성’에 지나지 않을 경우 언제든 악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선이 대표적 사례이다. 위선은 타자 앞에서 악을 선으로 주장하며 자신의 의지는 선하다고 합리화하는 주관적 양심의 결과이다. 헤겔은 악을 선으로 전도하는 자기확신적 양심을 비판하며 ‘참된 양심’을 제시했다. 참된 양심이란 “절대적으로 선인 것을 의욕하는 마음가짐이다.” 여기에서 절대적이란 말은 개인적 심정과 사회적 상식·규범의 통합을 의미한다. 단순히 주관적 자기 확신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합의, 상식, 여론 등에 기초해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절대적으로 선한 것을 추구하는 심성이 참된 양심인 것이다. 헌법재판관은 ‘헌법에의 의지’를 재인식한 민심에 응답해 대통령의 자기확신적 위선을 물리칠 수 있는 헤겔적 참된 양심에 따라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헌재의 민주적 존립 근거가 확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