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 꺼진 고리에 불씨도 꺼졌는가

[기자수첩] 불 꺼진 고리에 불씨도 꺼졌는가

기사승인 2017-07-04 00:10:00

[쿠키뉴스=김양균 기자] 고리원전 1호기가 폐쇄됐다. 설계 당시 수명이었던 2007년 6월을 훌쩍 지나 10년이 더 가동된 끝에 내려진 결정이다.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오는 2022년 월성 1호기, 2024년 고리 3호기, 2025년 고리 4호기와 한빛 1호기 등이 잇따라 폐로된다. 

고리1호기의 ‘종료’를 알리는 행사는 시끌벅적했지만 ‘불 꺼진’ 고리의 방사능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제염’, ‘절단·해체’, ‘폐기물처리’, ‘환경복원’의 전 단계를 위한 기술력이 우리에겐 없다. 현재까지 전 세계 438개의 원전 중에서 영구 정지된 원전은 150기이며 이 중 완전히 해체가 끝난 것은 고작 19기에 불과하다. 비벼 끈 불의 불씨가 사방에 날아다니고 있지만, 이를 잡으려면 해외의 기술력을 가져와야 한다. 해체 과정에서 혹시 모를 유출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불씨로 가득한 ‘화로’를 정리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다. 

2014년 발표된 ‘기장군민 건강증진사업’ 결과에 따르면 2010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건강증진센터에서의 암 진단율은 3%를 상회했다. 갑상선암이 41건으로 가장 많았다. 폐로 결정이 났다지만, 방사능의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폐로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은 이곳 주민들이 곧 맞닥뜨릴 실재적 위험이다. 

사실 고리원전과 맞닿아 있는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 주민들은 수십 년째 고통을 호소해왔다. 삶의 터전은 고립되고 황폐해졌다. 조용한 어촌 마을의 주민들은 고리원전의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했으며, 집단이주와 관련한 오랜 갈등은 주민들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폐로 결정 전 기자가 찾은 길천마을의 풍경은 쓸쓸했다. 곳곳에 빈집이 즐비했으며, 한낮의 공기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만난 주민 김영희씨(58·여·가명)는 “불안은 일상”이라고 말했다. 해체 작업에 돌입하면 마을은 잠시나마 활기를 띄게 될 것이다. 착공만큼 해체에도 천문학적인 돈과 시간이 소요된다. 파탄 지경에 이르렀던 마을에 돈이 돌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직 방사능의 위협이 둥둥 떠다닌다.  


◇ 문은 닫히지만…

“원전 가려면 저기 보이는 두시 반 버스를 타세요.” 해운대 시외버스터미널의 매표소 직원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울산까지 가는 시외버스 전면에는 붉은 글씨로 쓰인 ‘고리’가 선명했다. 칙 소리를 내며 버스 문이 열렸다 닫힌다. 이름 모를 국도를 한 시간이나 달렸을까. 시야에 고리1호기가 들어왔다. 

흙먼지를 날리며 떠난 버스를 뒤로 하고, 다리를 건너자 길천마을이었다. 황량한 도로변에서 한 아낙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마을은 이따금 오가는 차량을 제외하면 인적이 드물었다. 고리 발전소 입구는 이중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고 곳곳에 보안카메라가 오가는 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전소 주변에는 비교적 최근 지은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늘어 서 있었다. 대부분 원룸텔이었다.

김예순씨(58·여·가명)는 길천에서 예순 세 해를 살았다. 그는 고리 1호기를 준공하던 1978년 4월의 봄을 기억했다. 인부들에게 밥도 팔고 술도 근근이 살았다. 일 년에 한두 차례 발전소 셧다운(보수공사) 때를 제외하면 수익이랄 것도 보잘 것 없다. 그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 중 상당수가 발전소에서 청소를 하거나 스포츠센터에서 일을 해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주되면 나가고 안 되면 계속 살아야지. 원자력 옆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을 위해서 사는 거니까. (방사능에) 무심해졌어, 이젠.”

낚싯대를 붙잡고 있던 이성민(가명·52)씨는 낚시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의 일과는 원전 바로 옆의 부둣가에 앉아 낚시를 하며 소일하는 게 전부다. 원전을 지척에 둔 곳에서 잡힌 생선은 활어회라 인기가 많다고 했다. 

“70~80년대에는 발전소 다니는 사람들 상대로 돈을 꽤 모았어요. 발전소에서 철야 작업하면 식권을 나눠줬어요. 구멍가게에서 담배와 술을 살 때도 식권을 냈지요. 부산 시내까지 식권장사가 상당했다니까요. 그것도 이젠 옛날 얘기에요.”


원전이 살아있을 때에는 후쿠시마처럼 폭발할까 겁이 났다. 영영 이주를 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해체 이후는 무엇을 해야 할지 기약할 수 없다. 이들의 불안한 삶은 계속 방사능과 맞물려 이어진다. 

오른손에 낚싯대를 움켜잡은 사내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더는 함께 돌풍을 맞고 서 있을 자신이 없어졌을 무렵 그가 한마디 했다. “고리가 ‘문’을 닫으면, 나도 이제 ‘문’을 닫아야지….” 

멀리 돔 너머에서부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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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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