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기영 ‘찔러보기 인사’, 文 정부 ‘불통’ 이미지 키웠다

[기자수첩] 박기영 ‘찔러보기 인사’, 文 정부 ‘불통’ 이미지 키웠다

기사승인 2017-08-11 18:28:07


[쿠키뉴스=김정우 기자] “꿈이 있으면 국민적 지탄을 받아도 맡을 수 있는 것이 공직인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던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된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입장 표명을 듣고 들었던 의문이다.

박기영 본부장은 임명 후 자신을 둘러싼 비난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자 10일 과학계 원로들과의 간담회 자리를 빌어 당시 사건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다만 “꿈과 이상을 제대로 한번 실현해보고 싶은 생각에서 과기혁신본부장을 자임하게 됐다”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박기영 본부장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곁에서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내며 황우석 박사를 국민적 이슈로 떠오르게 한 ‘설계자’이자 그의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한 ‘당사자’로 인식되고 있는 인물이다. 다수의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과학계에는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기억되는 만큼 이번 인사에 따른 파장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전 어느 정권에서도 인사와 관련된 잡음은 항상 있었다. 도덕성과 자질 문제, 더 깊이 들어가 정치적 배경과 관련된 여러 입장이 엇갈리면서 논란의 도마에 오르는 것이 이제 익숙할 정도다.

문재인 정부도 이 같은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다만 ‘국민적 지지’를 무기로 야당의 반대 속에서도 다수의 인사가 강행됐고 다소 아쉬운 점이 있어도 인수위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던 만큼 ‘속전속결’의 당위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박기영 본부장 임명에 와서는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큰 논란과 진통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과거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문제에 직접 연관된 인물이 뒤늦은 사과만으로 국가의 미래를 그리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이 같은 인사를 단행한 정부의 생각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맞닿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전 정권에서 탄생한 미래창조과학부를 해체하기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름을 바꾸고 20조원에 달하는 연구개발 예산권까지 쥐어주는 방향을 택했다. LG전자 출신 장관 인사부터 기초과학보다 IT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어왔지만 과학기술혁신본부라는 컨트롤타워를 마련하고 연구개발 예산을 관장하게 함으로써 일말의 기대감도 갖게 했다.

이 과기혁신본부의 수장으로 박기영 본부장이 임명된 것이니 과학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거센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과기혁신본부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권한을 쥐락펴락하려는 모종의 음모’라는 시각과 함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한탄도 터져 나왔다.

특히 이번 간담회에서 한 기자는 “(앞으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과오가 발견돼도 반성하면 그냥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연구비 예산 관리 자세에 대한 물음이었지만 박기영 본부장이 사과만으로 넘어가려 하는 데 대한 냉소적인 비판으로 들렸다. 박 본부장은 “문제가 있으면 (연구과제에서) 배제되는 게 맞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의 상사였던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 야당의 반대 속에 참여정부 시절과 연관 있는 인사들이 강행되면서 ‘정해놓은 그림대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적폐 청산’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당연히 그 대표적 대상으로 꼽힌 전 정권의 ‘불통’ 꼬리표를 이어받을 생각도 없을 것이다. ‘광화문 대통령’, ‘촛불 민심’ 등 이번 정권이 내세운 여러 단어들도 불통이 아닌 ‘소통’의 상징들이다.

박기영 본부장의 입장 표명 후 각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계는 물론이고 서울대, 고려대 등 교수들의 사퇴 촉구 서명운동이 번지고 있으며 진보 성향의 방송인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청와대는 박기영 본부장과 관련된 과학계의 반발을 인식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반응을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대안이 충분히 있음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을 일단 밀어붙이고 ‘국민의 반응’을 간 보듯 보는 것을 소통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검토하는 자세 없이는 불통의 꼬리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과 광장에서 소통하는 연출을 보여주기보다 실제 산업·학계 등의 분위기를 적극적이고 깊이 있게 파악하는 정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tajo@kukinews.com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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