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이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마니아 수준인 것은 회사사람들 중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그는 항상 아침 미팅 전에 직접 핸드드립 커피를 추출해서 직원들이 즐기도록 세팅해놓는다. 그런 까닭에 회사 직원들 중에서도 김 부장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많다.
그런데 다들 커피가 맛있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지만 김 부장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다.
매일 같은 커피원두를 사용하고 같은 기구를 사용하는데, 그제는 맛없게 내려졌던 커피가 어제는 맛있게 추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정말 맛있게 추출되었다. 도대체 커피를 추출 할 때마다 맛이 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원인은 김 부장의 추출방법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커피 가루를 담을 때나 물을 부을 때에도 자신의 '감'과 '눈대중'으로 담았고 그렇게 추출했다. 그러니 맛에 일관성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할 것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떨 때는 내가 추출한 커피가 정말 맛있을 때도 있어요."
소도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을 수도 있듯이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데이비드 핸드는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적인 명문 영국의 ‘임페리얼 컬리지’ 수학과 명예교수이자 선임연구원이며, 통계학으로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사람인데, 그는 자신의 저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 발생확률이 지극히 작은, 즉 극도로 개연성이 낮은 사건들도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그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계를 데이터 화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계가 쌓이게 되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커피를 추출하는 것에도 운이나 우연이란 결코 없다. 운 좋아서 좋은 맛이 나고, 운이 안 좋아서 맛없게 추출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맛있게 커피를 추출하는 것은 100프로 실력이고, 여기에는 엄밀히 과학의 법칙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서 커피의 좋은 맛과 향은 좋은 커피나무에서 좋은 커피가 나온다. 커피열매는 원종에 가까울수록 맛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커피의 대량생산을 위해서, 병충해에 강한 커피 만들기 위해서, 원종과 접붙여서 맛이 없지만 생산량이 많거나 병충해에 강한 교잡종을 만들었다.
본래 콜롬비아 ‘수프리모’는 매우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커피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로부스타’와 교잡종을 만들었다. 생산량도 늘고 이전보다 병충해에 강해지기는 했지만 대신에 맛과 향의 손실이 컸다. 최근 콜롬비아 정부가 ‘로부스타’의 혈통을 버리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직도 콜롬비아 ‘수프리모’ 커피에는 25%의 ‘로부스타’의 혈통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콜롬비아 커피는 생산량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품질을 포기한 대신에 이전과 같은 명성을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커피의 맛과 향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만큼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1.커피의 품질
품질 좋은 커피가 좋은 맛과 향을 낸다.
2.결점 두(缺點豆)의 완벽한 배제
결점두가 있으면 결코 좋은 맛을 낼 수 없다. 따라서 결점두는 최후의 한 알이라도 제거해야 한다.
3.최선을 다한 커피 로스트
대량으로 아무렇게나 볶아낸 커피가 좋은 맛과 향을 낼 수 없다.
4.수율에 맞춘 추출
커피 가루 정량을 담고 정확하고 고르게 물을 주입한 후에 정해진 시간에 추출을 마친다.
커피비평가협회에서는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저울과 초시계, 유리 샷 잔
을 사용하도록 가르친다. 이는 언뜻 귀찮아 보이기도 하고 필요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가 제자들을 이끌고 일본 도쿄 신주쿠의 블루버틀 카페에 갔을 때, 그곳 바리스타들도 저울과 초시계를 사용하며 수시로 커피 가루입자를 조절하는 것을 보았다. 세계적인 카페로 유명해진 이유가 바로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데이비드 핸드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주 많은 기회가 있으면 아무리 드문 일도 일어 날 가능성이 높다."
어쩌다 한 번 커피를 맛있게 추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언제 추출해도 늘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추출에는 ‘우연’이란 없다. 오직 ‘과학적 법칙’이 커피의 맛을 결정한다.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