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감독 문소리)를 보는 모든 관객들에게는 아주 잠깐이라도 웃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것은 영화가 코미디여도, 실없어서도 아니다. 문소리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옥상 정원에서 마주앉은 문소리는 “제 영화가 코미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많은 분들이 웃어주기를 원했어요. ‘나는 너를 이해해. 너도 나를 이해하지?’라는 느낌의 웃음이 담겼다고 해야 할까요”라고 영화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들이 박수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를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객석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최근 있었던 언론시사회에서 큰 웃음을 유발했고, 스태프 롤이 올라갈 때는 박수를 받았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고무될 만도 하다. 그러나 문소리는 “업계 관련자들이 봤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겸손을 표했다.
“기자분들도 어찌 보면 영화 산업의 관련자들이니까 좋은 반응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영화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시니까 이해도가 더 높았고, 공감대도 크셨을 수 있죠. 특히 여기자분들이 저에게 좋게 봤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시는데,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지점에 관해 공감이 더 컸기 때문인 거 같아요.”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제목에는 동사가 빠져 있다. 거기에는 여배우는 오늘도, 뒤에 오는 동사가 제발 하나나 두 개에서 그쳤으면 좋겠다는 문소리의 바람이 담겨 있다. “여배우는 오늘도 연기해요, 여배우는 오늘도 홍보해요, 여배우는 오늘도 사랑받아요, 여배우는 오늘도 아름다워요 같은 몇 개의 이야기로 끝나면 참 좋겠죠. 그런데 그 뒤에는 너무 많은 동사가 존재해요. 심지어 그 동사들 가운데에는 양립할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하고요. 거기서 오는 아이러니들을 영화에 담았어요.”
‘여의사’ ‘여기자’ ‘여류 작가’ 같은, 특정 직업을 묘사하는 데 굳이 성별을 붙이는 한국 사회에서 문소리가 ‘여배우’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도 비슷하다. “어쨌든 저는 ‘여배우’라고 불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게 현실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그 여성이 배우이기 때문에 하는 고민을 담았거든요. ‘당신들은 내 삶을 여배우라고 부르지요? 사실 그 여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세요.’하는 마음이랄까요. 영화를 보시면 제가 그 단어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가 어떤 건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영화가 웃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감독 문소리가 영화 속 문소리를 들여다보는 시선은 너무나 객관화돼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서 과몰입하거나 하지 않고, 문소리는 문소리를 적절하게 움직여 관객에게 최대한 효과적으로 ‘여배우’를 비춰낸다.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삶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메타적 시선으로 담아내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문소리는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저는 교육학과를 나왔어요. 같은 과 친구들은 지금 선생님이나 9급 공무원, 법윈 서기직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죠. 아마 그런 친구들에 비해서 저는 특별히 돈을 많이 벌고 특별히 큰 집에 사는 편일 거예요. 그렇지만 다른 배우들에 비해 보면 저는 특별히 돈을 잘 벌지는 못하고, 작품 수도 적게 보일 수 있죠. 특별함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거예요. 데뷔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어요. 배우니까 늘 조금 더 누군가보다는 특별하다? 그런 생각은 없어요.”
“예전에 어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적 있어요. 시상자분들이 상을 주시기 전에 그러시더라고요. ‘여배우들은 영화의 꽃이다’라고요. 저는 그 말에 좀 반발심이 생겨서, 상을 받으러 올라간 후에 수상 소감으로 ‘꽃에게 주는 상을 받다니 감사하다. 그렇지만 꽃뿐만 아니라 뿌리나 거름, 줄기도 되고 싶다’고 말했죠. 철없을 때 울컥해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그 생각 자체는 변하지 않았어요. 꽃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저도 화려하게 필 때가 있고 시들시들할 때가 있잖아요. 영화를 계속 하면서 이 곳에서 든든한 존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발전적인 거름도 되고 싶어요.”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