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두 차례 연재에서 인천 용현동 갯골수로 매립을 둘러싸고 20년간 벌여온 주민들과 인천시 사이의 ‘밀당’ 과정을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악취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간절하게 매립을 요구했지만 인천시는 끈질기게 외면해온 과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인천시 행정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찾은 갯골수로 인근 용현5동 주민들은 인천시에 대한 불신을 적나라하게 나타냈다. 오죽했으면 주민들이 지난 8월 30일 인천 남동경찰서에 관련 공무원 5명을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까지 했을까. 주민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검찰 고발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들에 대한 고발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분명한 건 주민들이 인천시 공무원들을 그만큼 불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중앙행심위가 승주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숙원사업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거라고는 믿지 않는 눈치다.
“당연하지 않은가요? 중앙행심위 재결이 나왔으면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깔고 앉아 뭉개고 있잖아요. 그러니 제대로 될지 어떻게 알겠어요?”
주민들의 이구동성이다. 한 주민은 “이 사람들한테는 법도 안 통하다”며 “여기선 인천법이 최상위법이라고들 한다”고 탄식했다.
“인천시 처분은 위법하다”
주민들이 지난 8월 31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해양수산부에 이 사안에 대한 질의를 한 것도 불신의 소산이다. 질의는 △매립기본계획에 반영된 매립예정지가 현재 결정된 도시계획 용도지역과 다를 경우 해당 자치단체는 매립목적에 부합하도록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해야 할 의무를 가지는지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과 다르게 도시관리계획이 수립되어 매립목적이 도시계획상 용도지역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매립면허(신청)를 반려하는 것이 타당한지 등 두 가지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과 다르게 유수지로 지정한 것은 공유수면매립법 및 국토계획법에 반하는 것이며, 매립목적이 도시계획 상 용도지역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매립면허 신청을 반려하는 것은 적정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즉 인천시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세월만 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주민들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이야기 한다. 한 주민은 복지부동이 아니라 ‘낙지부동'(낙지처럼 빨판을 바닥에 붙이고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비아냥거리는 말)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복지부동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것은 인천시가 왜 승주에 하부지역에 대한 이해당사자 지위 포기를 종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 한 지역일간지가 지난 7월 ‘인천시가 하부지역 매립으로 땅장사에 나설 채비’라는 보도를 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인천시는 지난해 7월부터 하부지역 유수지 46만㎡를 매립해 첨단물류단지와 공원녹지를 조성해 36만㎡를 3.3㎡당 약 210만원에 파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2520억원의 세외수입을 예상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천시의 한 관계자는 “논의된 바는 있지만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말하자면 아이디어 차원의 검토였다는 것. 하지만 단순히 논의 수준에서 머문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그간 인천시 공무원들이 보여 온 태도를 보면 인천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시민 안 찾는 시민휴식공간은 왜 만들었을까
하부지역 유수지 주변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한 것도 의혹을 증폭시킨다. 주지하듯 인천시는 2006년 11월 1일 승주의 도시관리시설변경 결정 입안 제안을 거부하면서 ‘갯골수로 하부지역 유수지 주변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어 상부지역도 자연친화적으로 조성토록 계획 중’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당시 인천시는 실제 171억여 원을 들여 하부지역 한 복판에 인공 섬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 시민휴식공간이라고 내세웠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을 찾는 시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중교통수단으로는 가기 어려워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가 인근 주민들조차 찾지 않을 정도로 미관이 안 좋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친수공간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런 일을 왜 벌였을까. 더욱이 악취로 민원이 끊이지 않아 온 곳인데다가 인천시 스스로 유수용량 유지를 이유로 상부지역 매립을 거부해 왔으면서 유수용량을 크게 줄이는 인공 섬을 만들 생각을 왜 한 것일까.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미스터리는 또 있다. 바로 승주 주현웅 사장이 왜 20년이나 용현 갯골수로에 매달려 왔을까 하는 게이다. 승주가 지금까지 들인 돈은 용역비와 사무실 운영비 등 35억여 원에 이른다, 다른 사람 같으면 진작 포기하고 인천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을 법한데 ‘미친 사람’ 소릴 들으며 그는 무슨 까닭으로 20년을 버텨왔을까.
그는 무역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중국에 공장을 두고 삼각무역을 해 성공가도를 달려 왔었다. 그런 그가 용현 갯골수로 매립에 뛰어든 것은 인천 토박이기 때문이다. 그는 갯골수로 하부지역이 속한 학익동에서 태어나 한번도 인천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다.
“저한테는 단순히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일입니다. 우리 동네 숙원사업이고 주민들과의 약속인데 어떻게 중도에 접을 수 있겠습니까?”
주 사장은 중국 공장도 처분했다. 이제는 사무실 하나만 달랑 남았다. 그래도 주 사장은 후회하지 않는다.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자부심도 있다. 오기도 났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용현5동 주민들은 인천시 공무원들을 불신하지만 주 사장은 공무원들의 선의를 믿고 있다. 그동안 번번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지만 현재의 관계 부서 공무원들은 다를 거라고 믿는다. 용현 갯골수로의 기막힌 사연이 언제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
인천=조남현 기자 freecn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