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입니다. 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죠. 처녀수태로 태어난 예수님이 아닌 이상, 모든 사람에게는 생물학적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의 입장은 다른 모양입니다. 임신 및 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24일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의 공개변론이 열립니다. 그러나 법무부가 위헌 주장 측을 '무책임하게 성교하고 책임지지 않는 여성'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난 23일 CBS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의 변론요지서에는 낙태죄 폐지 관련 내용을 '생명권 vs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전제하고, 낙태를 하려는 여성에 관해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적시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통상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강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성행위에 의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에 여성이 자유롭게 이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부연으로 "자의에 의한 성교에 따른 임신을 가리켜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기도 했죠.
문제는 법무부가 여성의 임신 및 출산에 따른 이후 상황들에 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임신을 하며 여성이 물리적으로 어떤 부담을 겪는지, 또 출산으로 인해 사회적 입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낙태죄에 따른 별개의 간접효과에 불과하다”고 선을 긋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법무부의 입장은 여성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고 법무부도 적시했으나, 현재 낙태죄로 처벌받는 것은 여성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분명하다 해도, 통상적으로 여성이 낙태 시술을 받을 경우 처벌은 여성에게 집중됩니다. 강간 등의 성범죄를 당했다 해도 성범죄였음을 입증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지난하고 오래 걸려, 여성은 원하지 않는 임신임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출산을 겪어야 하기 일쑤입니다. 행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 경우죠.
덧붙여 임신 혹은 출산으로 겪어야 하는 사회적 차별 때문에 임신을 중단하고 싶은 여성을 단지 무책임하다고 모는 법무부의 태도에 여성들은 앞다퉈 목소리를 냈습니다. 현재 SNS 상에서는 “#법무부장관_해임”이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법무부 답변서를 이용해 “자의에 의한 법무부 답변서는 응당 장관 해임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라는 비판이 등장하기도 했죠. 무엇보다 여성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는 여성 자신에게 있으며, 무엇으로도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만한 큰 신체적 변화에 대해 판단하고 시술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여성들의 목소리입니다.
한편 여가부는 법무부와 반대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식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정부 부처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폐지 의견을 낸 것이죠. 지난 3월 30일 여가부는 “여성의 기본권 가운데 건강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현행 낙태죄 조항은 재검토돼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습니다. 모자보건법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의견서를 내지 않았죠.
여가부는 현행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지적했다고 하네요. 2011년 복지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해 약 17만여건의 인공임신중절이 진행되지만 실제 기소되는 경우는 연간 10여건에 불과합니다. 덧붙여 여가부는 낙태죄가 안전한 임신중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의료인이 시술하면 더 엄하게 처벌하다 보니 비의료인에게 수술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수술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나도 정식으로 보상을 요청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제한적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의 배우자 동의 조항도 ‘성차별적 조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13년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이때 진행한 낙태 상담 12건 가운데 10건이 남성이 여성의 임신중절 사실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한 건이었다고 합니다. 낙태죄는 과연 태아의 생존권을 위한 법일까요.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생존권 때문에 이미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또다른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