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3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리핀 김대호 감독의 말을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챌린저스 코리아(2부 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른 후 방송 인터뷰에서 “1부 리그(롤챔스)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까지는 그랬다.
그날 김 감독을 처음 독대했다. 목적은 롤챔스 승강전 사전 취재였다. 당시 그리핀은 챌린저스 역대 최고 승률을 갈아치운 팀이었다. 그때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쓴 기사 제목은 ‘그리핀이 그렇게 잘해? 승강전 최고 기대주 그리핀은 어떤 팀’이었다.
하지만 ‘승강전 최고 기대주’라는 수식어는 곧 터무니없이 인색한 표현이 됐다. 계절이 바뀌자 기대주는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진출을 노리는 팀으로 거듭났다. 그리핀은 13일 2018 롤챔스 서머 정규 시즌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강호 젠지를 2-1로 꺾었다.
이로써 그리핀은 8승1패(+11) 성적으로 1라운드를 마무리했다. 쟁쟁한 팀 모두 제치고 리그 단독 선두다. 지난 스프링 시즌 결승전을 치렀던 킹존과 아프리카, 작년 롤드컵 우승팀 젠지(삼성)가 지금은 이들보다 아래에 있다.
김 감독의 허풍 같았던 호언장담이 뚜렷한 실체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이 기세를 그대로 이어나가 서머 시즌 우승을 차지한다면 그리핀은 롤드컵에 직행한다. 플레이오프까지만 진출해도 지역 대표 선발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핀의 돌풍이 멈출 줄을 모른다. 젠지전을 끝으로 1라운드 일정을 모두 소화한 김 감독은 “1라운드를 잘 마쳐 행복하다. 롤챔스에 와 다양한 색깔을 가진 팀을 모두 만나고 부딪쳤다”며 “배우는 재미가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감독은 ‘재미’를 강조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재미”라며 “우리는 상상력의 팀이다. 어떤 패치가 오든 알맞게 변화해 2라운드에도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2라운드 때는 1라운드 때 배운 걸 토대로 발전하겠다”고 첨언했다.
그의 말처럼 그리핀은 꾸준히 발전해왔다. 김 감독은 지난 3월 승률 93.3%로 챌린저스 역사를 새로 쓴 팀을 두고 “지금으로썬 높게 쳐봤자 롤챔스 중위권 정도의 기량”이라고 냉정하게 자평했다. 그러면서 “약점을 개선해 서머 우승을 노리겠다”고 말했다.
스킬은 다소 대충 썼을지언정, 리더십과 게임을 보는 눈만은 누구보다 탁월했다. 그의 말대로 그리핀은 3개월 만에 롤챔스 선두급 팀으로 다시 태어났다. 선수도 기량이 향상됐음을 체감한다. 경험이 곧 자양분이다. 원거리 딜러 ‘바이퍼’ 박도현은 “대회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저도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가 공언한 대로 3개월 만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김 감독은 “챌린저스 때는 (롤드컵 진출을 목표로 한다고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망상’이라고 저를 욕했다. 이제 조금이나마 제 생각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생긴 것 같아 기쁘다”고 밝혔다.
그리핀은 오는 가을에도 로열 로더의 길을 걷고 있을까. 선수들은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태도다. 팀의 에이스 박도현은 13일 젠지전 승리 후 인터뷰 자리에서 “롤드컵 진출까지 3분의 1 정도 도달한 것 같다”며 “아직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고 말했다.
‘김대호 매직’은 이뤄질까. 그리핀은 오는 17일 롤드컵 본선을 목적지 삼아 두 번째 봉오리 등정을 시작한다. 2라운드 첫 대결 상대는 아프리카 프릭스다. 지난 11일 1라운드 경기에서는 그리핀이 2-0으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