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몸이나 처신 또는 그의 주변에 관한 일이나 형편’을 뜻하는 명사 ‘신상’ 뒤에 ‘남이 가진 재물을 몽땅 빼앗거나 그것이 보관된 장소를 모조리 뒤지어 훔치다’는 의미의 ‘털기’가 붙으면 우리가 흔히 아는 합성어가 만들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신상털기’입니다. 신상털기는 어떤 이의 신상 관련 자료를 찾아낸 후 이를 무차별 공개하는 일종의 테러를 일컫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신상털기가 본격화된 시기는 지난 2005년입니다. 지하철 안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려 비난을 받은 이른바 ‘개똥녀’ 사건이 그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개 주인의 이름과 학교 등의 정보가 인터넷 카페, 커뮤니티, 블로그에 도배됐습니다. 그의 얼굴이 찍힌 사진도 함께 말입니다. 개똥을 치우지 않고 자리를 떠난 것에 대한 네티즌의 지엄한 심판이 내려진 것입니다.
물론 신상털기는 불법입니다. 공론화 대상이 된 인물의 잘못이 명확하든 아니든 말이죠. 타인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비난하는 행위는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71조는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신상털기 현장을 목격하고 동조해왔습니다. 연예인의 연인, 승무원을 폭행한 대기업 임원, 올림픽에서 오심 판정을 한 외국 심판, 성범죄 피해자까지. 신상 공개 대상에는 기준도 경계도 없었습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3일 어린이집 교사 A(38)씨가 경기 김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투신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발견된 유서에는 “어린이집 원생인 B군과 가족에게 미안하다”며 “원망을 안고 가겠으니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A씨는 어린이집 견학 행사 당시 B군을 밀쳤다는 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그 지역 ‘맘카페’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A씨의 실명과 사진 등이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A씨의 동료 교사는 “3년을 함께 근무한 사랑하는 동료를 잃었다”면서 “견학 날 교사에게 안기려 한 아이를 밀친 후 돗자리를 털었다고 마녀사냥이 시작됐고 A씨의 신상이 공개됐다. 순식간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신상털기가 불러오는 폐해는 이렇게 심각합니다. 무고한 가해자가 생기거나 가족 혹은 지인 등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모두 그때 뿐 우리의 반성은 늘 어쭙잖은 정의감 뒤에 있었습니다. 동시에 ‘A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맘카페 회원들의 신상을 털자’는 수십 개의 댓글을 보며 생각합니다. 성찰은 아직도 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