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한국체대) 선수가 조재범(38·수감 중)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체육계의 폭행 및 성폭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습니다.
심 선수의 법률 대리인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 8일 “조 전 코치가 2014년부터 이후 4년간 무차별적 폭행과 폭언, 협박 등을 수단으로 하는 성폭행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질러왔다는 진술을 듣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세종은 지난달 조 전 코치를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상해)’ 혐의로 경기남부경찰청에 고소했습니다.
성폭행이 발생한 2014년에 심 선수는 만 17세의 미성년자였습니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 슬픔을 삼켜야 했을 심 선수의 고통이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손가락뼈가 부러질 정도의 폭행도 모자라 어린 선수를 성적으로 짓밟은 조 전 코치의 작태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다만 우리가 집중해서 봐야 할 것은 성폭력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시각과 태도입니다. 체육계에서는 위계를 이용한 성폭력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 중학교 소속 코치는 자신이 가르치는 운동부 학생을 성폭행해 구속됐습니다. 같은 해 3월에는 국가대표 리듬체조 단체팀 이경희 코치가 “전직 대한체조협회 간부에게 장기간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됐죠.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음에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심 선수 폭로 이후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등 처벌을 강화하는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가해자 엄벌은 물론 폐쇄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자행되던 체육계 고질적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심 선수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릴 만큼 정신적 충격이 큰 심 선수가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폭행과 성폭행이 드러나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체육계에서 피해 폭로 결심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심 선수는 10일 서울 태릉선수촌을 통해 대표팀에 합류했습니다. 쇼트트랙 대표팀 송경택 감독은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밝은 표정을 짓더라.”라며 “운동에 전념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고 전했습니다. 심 선수를 향한 응원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열렬히 말입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