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개혁법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가운데 이에 맞서는 자유한국당이 전국 투어 투쟁에 나섰다. 한국당은 청와대 앞에서 개최한 최고위원회의를 시작으로 서울역 광장에서 규탄 집회를 여는 등 장외여론전을 이어갔다.
집회 현장에는 수십명의 당 지지자들이 운집해 당 지도부의 연설에 호응했다. 이밖에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 중인 이재오 4대강보해체저지범국민연합 공동대표과 당 지도부 간의 깜짝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다.
한국당은 2일 청와대 인근 분수대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 황교안 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9명의 당 지도부가 참석해 ‘민생파탄, 친문독재 바로 잡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고 문재인 정권을 규탄했다.
이날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은 국정의 우선순위부터 잘못됐다”며 “지금이라도 악법인 패스트트랙을 철회하고 경제 살리기에 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는 “청년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고, 일터에서 쫓겨낸 가장들의 절망이 거리를 메우고 있는데 공수처 설치가 뭐가 급하나. 전통산업과 신산업의 갈등 하나도 제대로 못 털면서 검경수사권조정에 왜 이렇게 목을 매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총선용 선심 추경이 아닌 제대로 된 재난·민생 추경을 추진해야 한다. 무려 24조원에 달하는 예타면제사업과 54조원 일자리 예산을 가져다가 단기 알바만 양산했다”며 “국민 세금을 선심 정책에 퍼붓고 혈세를 풀어 표를 사는 매표행위 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해 검찰 내 이견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 원내대표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현직 검찰총장마저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며 “(패스트트랙 지정이) 얼마나 반민주적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이 한국당 보좌진과 당직자를 고발한 것에 대해서도 “저 하나로 충분하다”면서 “수사하더라도 저를, 탄압하더라도 저를 탄압하라. 다른 의원들과 당직자들의 고발을 즉각 취하해달라”고 촉구했다.
회의에 앞서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1인 시위 중인 이재오 공동대표를 만나 격려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 공동대표는 지난달 29일부터 4대강 보 해체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질의를 구해왔다.
회의를 마치고 한 시간 뒤 서울역 광장에서는 ‘문재인 STOP! 서울시민이 심판합니다!’라는 슬로건의 대통령 규탄대회가 열렸다. 이날 규탄 대회는 수십 명의 취재진과 당원 등 지지자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이은재 서울시 당협위원장 등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잇달아 단상에 올랐다.
가장 먼저 연설에 나선 이 위원장은 “문재인 정권의 좌파 독재는 이미 시작됐다”며 “행정부 관료와 사법부의 대법관, 헌재 재판관을 입맛대로 앉히더니 그것도 모자라 입법부 장악을 위해 선거법도 바꾸겠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연동형 비례제는 여러분이 누구에게도 투표했는지도 모르는, 무책임한 선거 제도임은 물론 소수 좌파 정당을 앞세워 문 정권의 독재를 강화하려는 선거제도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자영업자, 알바생 등 우리 이웃들이 매일 피눈물 흘리며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다”고 했다.
또한 “촛불정신을 훼손하고 경제를 갉아먹는 현 정권의 독주와 좌파 독재를 막는 유일한 정당이 자유한국당”이라면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횃불을 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단상에 오른 나 원내대표는 연설 내내 당원 및 지지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나 원내대표는 “많은 분이 그런다. 국회의원들 밥그릇 싸움 아니냐고”라면서 “아니다. 왜 저희가 반대했겠나. 내가 찍은 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선거법은 결국 좌파 세력이 대한민국 의회의 절반 이상을 반드시 안정적으로 차지하게 만드는 법이기 때문에 저희가 반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이) 왜 선거법과 연결되는가”라면서 “국회에서는 우리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논의한다.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으로 하면 지금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더 가속화된다. 그대로 두셔서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래서 저희가 나섰다. 선거법은 바로 국민 밥그릇”이라면서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과 함께 ‘선거가 민생이다. 선거법이 민생법이다’라는 구호를 제창했다.
마지막으로 차례를 가진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을 ‘역대 최악의 마이너스 정권’이라고 평가하며 15분가량의 규탄연설을 이어갔다.
황 대표는 “경제가 마이너스 되니 우리 가계부도 마이너스됐다. 저부터가 마이너스다. 여러분의 가계부를 마이너스로 만드는 이런 정부 그냥 둬도 되겠나”라면서 호응을 끌어냈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을 두고 싸울 때가 아니다. 민생보다 선거법이 더 급한가”라며 “왜 제1야당을 무시하고 서둘러 하고 있나. 그러니까 독재정권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각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선 한국당 의원들의 삭발식이 열렸다.
삭발식에는 한국당 소속 김태흠 좌파독재저지특위 위원장과 윤영석·이장우·성일종 의원, 이창수 충남도당 위원장이 참석해 패스트트랙 지정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김 의원은 “오늘 삭발식의 사생취의 결기로 ‘문재인 좌파독재’를 막는 데 불쏘시개가 되고자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한국당 지도부는 이날 서울을 시작으로 대전과 대구, 부산을 찾아 장외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3일은 광주와 전주를 방문해 투쟁 일정을 이어간다.
엄예림 기자 yerimuh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