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이 지났지만 KCC의 이별 방식은 여전히 서툴다.
KBL은 15일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한 56명과 원소속팀의 우선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총 27명이 원소속팀과 재계약을 맺었고 20명은 결렬됐다.
이 중 KCC의 FA 시장 행보가 팬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
KCC는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들인 전태풍(38), 하승진(33)과의 계약을 포기했다.
2m21cm의 장신 센터 하승진은 데뷔시즌부터 챔프전 우승에 기여하는 등 지난 시즌까지 KCC에서만 뛰며 챔피언 반지 2개를 안긴 선수다. 전태풍도 2009년 혼혈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KCC에 입단한 뒤 수준급 기량과 팬서비스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KCC는 이들 외에도 김민구와 정희재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수비 전문 베테랑인 신명호(35)와는 재계약을 맺었지만 이마저도 지난 시즌 보수총액(1억원)에서 40%나 삭감된 6000만원에 손을 잡았다.
어쨌든 농구도 비즈니스다. 팀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라면 베테랑과의 이별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들을 ‘용도폐기’ 하듯 내친 KCC의 이별 방식이다.
하승진은 공식발표가 나기 전인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구단이 협상테이블에서 팀은 재계약 의사가 없으니 자유계약 시장으로 나가보라고 얘기를 꺼냈다”며 “그 짧은 순간 보상선수도 걸려있고 금액적인 보상도 해줘야하는 나를 불러주는 팀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팀에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는 이어 “고민을 해보니 전부 다 힘들 것 같더라. 결국 아쉽지만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 11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희노애락을 함께해온 이 팀을 떠나자니 아쉬운 마음이 무척 크다”고 털어놨다.
이를 접한 팬들은 “KCC가 사인 앤 트레이드라도 제안했어야 했다”며 “보상 선수 때문에 잡을 구단이 없다는 걸 아니까 시장으로 등을 떠밀었다”고 KCC 구단을 비판했다.
전태풍도 구단의 협상 과정, 태도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14일 자신의 SNS에 KCC 구단이 계약 얘기와 코치 제안 등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구단은 코칭스태프가 전태풍을 불편해한다고 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전태풍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구단이 FA 규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너무 충격을 받았고 마음이 아팠다. 마치 가시에 찔린 것 같았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KCC의 이번 행보는 기시감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럽다. KCC가 간판스타와 마침표를 찍는 과정은 이전부터 썩 매끄럽지 않았다.
대표적인 선수가 이상민(현 서울 삼성 감독)이다.
이상민은 KCC의 전신인 대전 현대 선수로 데뷔해 10년 동안 코트를 누비며 팀을 정규리그 우승 3회·플레이오프 우승 2회로 이끌었다. 그를 향한 팬들의 신뢰는 두터웠고, 이상민 또한 습관처럼 “KCC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털어놓으며 구단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KCC는 2006-2007 시즌이 끝난 뒤 서장훈을 영입하는 대가로 삼성에 보상선수를 내주는 과정에서 이상민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삼성은 신인 지명 우선권을 요구했지만 KCC는 나이가 든 이상민의 활용가치를 낮게 판단했고, 이를 거절했다.
삼성 이적이 결정된 이상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팀의 심장과도 다름없던 선수를 허무하게 내준 팬들의 상심도 극에 달했다. 이상민은 2009~2010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지만 KCC의 베테랑 홀대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서툰 이별 방식이 계속된다면 팬들은 물론이고 선수들의 신뢰 또한 잃을 수 있다.
베테랑의 경험과 노련미가 신예들의 패기와 안정적인 조화를 이룰 때 강팀은 탄생한다. 같은 포지션에서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수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젊은 선수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함께 얻는 시너지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당장에도 ‘젊은 피’가 중심이 된 인천 전자랜드는 올 시즌 ‘신구조화’의 현대 모비스를 맞아 챔피언결정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전자랜드의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던 시리즈였다.
베테랑은 수치로만 평가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갖고 있다. 존재감만으로 라커룸, 코트에서 동료들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다. KCC가 ‘베테랑 홀대’ 기조를 고집스럽게 이어나간다면 ‘반쪽짜리 농구 명가’라는 오명을 피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