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위 사람들로부터 곤혹스런 질문을 받곤 한다. 한 달 보름여 전, 그러니까 지난달 중순 경기도 고양시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사건의 이후 진행상황에 대한 질문이다. 이는 지난해 6·13 지방선거 당시 이재준 후보(현 시장)의 부정·관권선거와 돈거래 의혹을 두고 일어난 사건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솔직히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다. 당시만 해도 한바탕 난리가 날 것처럼 떠들썩했던 그 사건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사건을 촉발시켰던 당사자들이 덮으려고 애쓴 덕분인지 뜨겁게 달아올랐던 시민들의 관심도 금세 식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기야 그 사건의 내용은 누가 봐도 충격적이다. 더구나 이 시장의 시정에 불만이나 반감을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관심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사건은 다시 이슈화할 필요성을 갖고 있다. 잠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가 유야무야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부정선거와 돈거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이다. 그보다 작은 일로도 허다한 고위공직자가 낙마하지 않는가.
그 사건은 의외로 단순하게 정리된다. 당시 보도된 여러 기사 등 이미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사건의 개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잘 정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금 상기하는 차원에서 사건의 전말을 요약해 보자. 고양시 비리행정척결운동본부 고철용 본부장의 폭로로 불거진 그 사건은 지역의 두 유력인사가 부정·관권선거와 돈거래 내용을 빌미로 이 시장을 협박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유력인사는 이봉운 전 제2부시장과 노복만 국민권익위 소관 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경기북부연합 회장이다. 두 사람 다 지역에서 상당한 중량감을 갖춘 인물로서 섣부르게 언행을 할 입장이 아니다. 이 시장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노 회장은 선거 후 부패방지 관련 지역대표를 맡아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이 전 부시장은 사건 직후 부시장 직을 사퇴하고 곧장 남북체육교류협회 수석부회장 자리를 꿰찼다.
어쨌든 지역의 두 유력인사가 공모해 이 시장을 협박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사건이다. 게다가 이 시장의 시장후보 때 베푼 도움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한 두 사람이 서운함과 배신감으로 의기투합한 정황이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 상황을 뒷받침해줄 증거물들이 여럿 있다.
다른 건 제쳐두고 두 사람이 공모해 작성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만 훑어봐도 사건의 흐름이 어느 정도 읽혀진다. “경선에서 이기도록 최성이를 지지했던 모든 표를 이재준으로 독려했다” “책 주고 어디서 돈 받은 것도 다 녹취되어 있다” “사퇴하려면 양심선언 하기 전 너부터 해라” “한번만 더 나를 흔들면 너 먼저 사퇴시키겠다” 등 몇 구절에서 잘 나타난다.
뿐만이 아니다. 노 회장이 고 본부장에서 써준 자필 확인서는 이 메시지의 내용을 새삼 확인해준다. 그리고 노 회장의 전화 음성녹취에는 돈거래 시간과 장소, 액수 등이 구체적으로 들어 있다.
그런데도 나중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이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다. 협박 사실을 부인한 것은 물론이고 증거물 속 내용들도 거짓이라 발뺌하고 나섰다. 메시지 작성과 관련해서는 두 사람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이 사건은 감쪽같이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져 갔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자, 이쯤에서 결론적인 이야기를 하자. 그 사건의 진위를 명쾌하게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용히 묻히기를 바라겠지만 그럴 사안이 아니다. 잘못된 일을 대충 넘기다 보면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기기 십상이다. 아직도 많은 공직자와 시민들이 그 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당사자들 또한 사건 발생 당시 직접 수사의뢰를 해서라도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었다.
협박은 작지 않은 범죄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부정선거와 돈거래 내용을 내세워 이 시장에게 공포감을 전했다면 분명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부정선거와 돈거래 의혹도 확실히 풀려야 한다. 만약 이 시장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올바른 시정을 펼치겠는가. 이는 고양시의 수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 사건에는 수사기관이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나 제3자가 수사의뢰를 하든 수사기관이 스스로 나서든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해서 사실과 거짓을 가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고양시와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이자 준엄한 명령일지도 모른다.
고양=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