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다시 태어난 티파니 영

[쿡리뷰] 다시 태어난 티파니 영

기사승인 2019-08-04 07:00:00

해사한 미소 뒤에 이런 뜨거움을 숨겨두고 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그룹 소녀시대의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배우 지망생인 티파니 영(Tiffany Young)의 얘기다. 눈을 반달 모양으로 휘며 짓는 그의 웃음은 고난이나 역경 따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그가 분투해온 시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구천면로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티파니 영의 단독 공연 ‘오픈 하츠 이브’(Open Hearts Eve)는 그가 분투 끝에 얻게 된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오버 마이 스킨’(Over My Skin), ‘낫 바비’(Not Barbie), ‘런어웨이’(Runaway), ‘더 플라워’(The Flower) 등 세트 리스트 절반 이상을 자작곡으로 채운 덕이다. 그는 솔직하고 씩씩하고 당당했다. 더는 ‘소녀’라는 이름에 그를 가둬둘 수 없음이 명징했다.

티파니 영은 2017년 10여년 간 몸담았던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자신이 나고 자란 미국으로 돌아갔다. 톱 걸그룹의 멤버에서 이방인으로. 주변의 만류는 만만치 않았다. ‘제정신이야?’라고 말리던 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티파니는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믿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노래를 쓰고 부르며 언젠가 그 곡을 팬들에게 들려줄 상상을 했다.

“지금이 꿈만 같아요” 미국에서 처음 쓴 곡이라던 ‘런어웨이’를 부르기 전, 티파니 영은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런어웨이’는 미국의 유명 가수 베이비페이스가 피처링한 노래다. 이날 공연에선 소녀시대 멤버 수영이 작사한 한국어 버전으로 들려줬다. 티파니 영은 “‘런어웨이’는 내 성격이 가장 잘 묻어나는 노래”라면서 “내가 원하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는 떠날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연인에게 도망을 제안하는 가사지만, 티파니 영이 미국으로 떠난 이유를 에둘러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느 것 하나 사연 없이 쓰인 노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여읜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꽃을 놓아둔 기억으로 썼다는 ‘더 플라워’(The Flower), 팬들에게 달콤한 노래를 선물해주고 싶어 만들었다는 ‘립스 온 립스’(Lips on Lips), “누군가 여러분에게 ‘쟤는 달라. 그래서 이상해’라고 할 때마다 불러라”라던 ‘낫 바비’(Not Barbie) 등이 그랬다. 지난해 가정사를 털어놓은 뒤 발표한 ‘본 어게인’(Born Again)은 고통 속에서 토해낸 사자후다. “힘든 순간에도 생존뿐만 아니라 번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달됐으면 해요. 상처를 꺼내놓을수록 새로운 힘이 생긴다는 것을요.”(‘본 어게인’ 메이킹 영상 中)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마음을 연다는 의미다. 티파니 영은 팬들이 써준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을 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공연 제목을 ‘오픈 하트 이브’라고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내 이야기를 알리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겠다는 것”이라면서 “이 공연이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다른 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꽃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 말미에는 지난 1일 생일을 맞은 티파니 영을 위한 팬들의 깜짝 이벤트가 펼쳐졌다. 이날 관객으로 온 소녀시대 멤버 수영이 2단 케이크와 함께 무대에 올라왔다. 케이크 위에는 ‘런어웨이’ 뮤직비디오 속 열기구를 본뜬 장식이 놓여있었다. 열기구는 티파니의 도전 의지를 집약한 오브제다. 관객들은 ‘달이 뜨는 모든 밤 너를 만나러 갈게’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티파니 영은 “내게 집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문득, ‘본 어게인’의 가사를 다시 떠올리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됐다. ‘네 사랑은 초자연적인 힘이야. 너는 매번 나를 더 힘껏 사랑하니까. 나는 다시 태어나.’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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